아침부터 베란다에 후둑이는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소풍을 앞둔 소년처럼 집안을 서성입니다
19층 복도에 서서 나즈막히 깔려 가는 비의 흔들림을 봅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여우비 같기도 하고
새벽이 밝자 아슴히 사라지는 등대빛 같기도 합니다
비가 흔들어대는 찬 공기 속에 내 영혼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산사의 아침비처럼 신선한 목어소리가 들려옵니다
풍경소리 생각을 흔들어댑니다
내친 김에 오늘은 일찍 출근합니다
만원버스가 아닌 헐렁한 공간이 좁습니다
도시 버스기사도 여유가 있는지 타는 쪽쪽 "어서오세요"를 말합니다
여유는 사람을 다정하게 합니다
차창에 빗줄기도 사잇길을 사이좋게 흐릅니다
내 지나온 길과 걸어가야 할 인생 길처럼 보입니다
간혹 시골 논두렁 혹은 원두막이 쳐진 산 아래 작은 길처럼 보입니다
그런 빗방울이 아릅답습니다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미소짓던 덜 익은 앵두같기도 합니다
떨떠름한 작은 감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감꽃처럼 흩어져 갑니다
7시에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텅 빈 사무실
녹차를 다려 마십니다
찻잔이 따스합니다 온기가 좋습니다
내 마음도 넓고 깊은 호수에 빠져드는 듯합니다
중학교 시절 비만 오면 학교 앞 단팥죽 집에 가서
호떡을 찢어 말아 먹던 그 시절, 붕어빵 온기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침 입니다
여고생이던 호떡 집 그 누나는 시집 가서 잘 살고 있을까나...
사무실 창가에 흐르는 빗방울이 사뭇
그리움의 물결로 쳐오는 듯합니다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니면 그리움에 목마른 외로운 사람의 환영 같기도 합니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저 빗줄기처럼 정처없이 흐르다가 이 서울로 오는 길을
영영 잊어버렸으면 싶습니다
기적소리 길게 울리는 군요
기차가 내달립니다
빗줄기는 차창에 박제되지 못하고 흐르다가 사라집니다
멈출 수 없는, 두 개일 수 없는 세월 탓이겠지요
우리네 인생도 둘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빗소리는 빗방울을 낳고
빗소리는 이대로 스러지는 것이 안타까워
내 마음의 창에 이슬로 열매 맺는 것입니다
쉼없이 영혼의 구슬을 굴리며
흔들리는 기차처럼 세월의 두 철길을 달리는 것입니다
구르는 빗방울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다만, 이 비 그치면 녹슨 물방울은 상흔의 껍데기로 아물어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