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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는 날의 아픔이며 슬픔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3. 8. 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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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좋아서
섬을 찾아가고
그것을 글로 만들어 보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보고
그렇게 살면서
돈 안 되는 섬문화연구소를 꾸려온 지
4년째를 접어들었습니다.

돈이 안되어도
섬을 찾아가고
섬을 좋아하는 시인들과 어우러져
시를 짓고
시를 낭송하고
포구에서 물고기도 잡고
나부끼는 여객선 깃발에 까닭없이 밀려오는
희망의 물결도 가슴에 맞아보고
그렇게 되돌아오면 늘 아름답던 섬 기행이었습니다
그것이 추억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영혼의 친구였드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낭만이 한 켠으로는 허전한 것임을
4년의 세월 내내 느끼곤 했드랬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망각하는 일은
세상 살면서 호흡하는 산소를 애써 잊으려는
삶의 모순이라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참으로 가슴 아프고 슬픈 일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사 가야만 합니다
너무 힘들어 선배 회사 한 귀퉁이로
끼어 들어가는 날이 서서히
두근거리는 초침을 데블고 다가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혼자라도 살겠다고
짐이 되는 것들을 죄다
재활용 코너에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버릴 때마다 홀가분한 것이 아니라
버릴 때마다 켜켜이 쌓이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 아픔이 허공에서 출렁이며 내내 아려 옵니다
시를 쓰는 내가 시집을 버리고
문학을 사랑하는 내가 문예지들을 내다 버립니다.

버리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인은 첫 시집이니 버리면 안되고
이 시인은 너무 가난해 버린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날벼락을 맞을 일인 것을
이 문예지는 너무 힘들게 운영하고 있으니 또한 아니될 일...

이렇게 저렇게 다시 주워오니
누군가가 "이사갈 때는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라고
일러줍니다
그것이 이사의 노하우라고 의미부여까지 합니다
다시 책을 보듬어 버리려 갑니다
동선이 짧은 그 공간에서 책을 버리는 길은
참으로 멀고 험한 길인 듯 합니다.

가난한 아비를 만나 고아원에 자식을 맡겨지듯이
속울음 우는 아비 마음 다 헤아릴 수 있다는 듯이
말없이 몹쓸 아비 얼굴만 바라보는 그 표정들에
이런 속말 들려옵니다
서점에서 천 원 짜리 지폐 대접받던 운명도 서러웠는데
시집의 최후가 이토록 처절해야 쓰것느냐 되묻는 듯 합니다.

마음이 아려 슬그머니 다시 나가 본 재활용 코너
듬뿍 쌓인 시집 표지 먼지를 탈탈 털어 내며
아리따운 처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습니다
눈물겨운 그들의 마음속에 안긴 시집 속의 묵어들
그 울림이 잔잔하게 전율되어 옵니다.

"아저씨? 이 시집 버리는 것 맞아요?"
"예. 좋은 시집 많아요. 제발 다 가져가세요"
"예∼아저씨 고마워요...."

합창하듯 일제히 감사함을 표하는 아가씨들
가난한 아비의 아들을 기꺼이 입양하겠다는
마음씨 고운 새엄마처럼 보였드랬습니다
그들은 이 아픔과 외로운 시집의 수호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난한 시의 마지막 보루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사가면 한동안은 참회할 것입니다
그 시집의 풍경들 속에
내 삶의 한 자락도 섧게 노래하고 있을 것임으로
한 동안 아픔이며 슬픔을 그대로 앓을 것입니다
제 삶의 자리 한쪽 오래도록 빈자리로 남겨두고
누군가 빗방울 같은 눈물이나
슬픔도 자박자박 걸어와 마음껏
분노하거나 질척이다 가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어느 섬
어느 바다에 가더라도
그 아픔의 파도소리가 되어 퍼렇게 허공에 나부낄 것입니다
흰 거품 물고 한 바다에 포말로 부서지기를 반복할 것입니다.

삶은 그렇게
넘어지고
한껍질 벗기면서
나부끼는 갯바람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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