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의 끝자락이었드랬습니다
30년만에 폭설이라고 했드랬습니다
저는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이 폭설을 마주했는데
사람들이 걸어갈 틈도 주지 않고 쏟아지던 그 폭설 앞에서
저는 더 어찌 하지 못하고
친구와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세상의 숨소리마저 송두리째 덮어버리는 눈발 앞에서
할말도 생각할 여유마저 다 잃어버린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드랬습니다
그 때 청주의 한 시인이
청주산성과 청주대 캠퍼스 숲이 마치
자작나무 우거진 시베리아 벌판 같다며
내려오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고민할 것도 없이
그 눈발을 따라 청주로 행했습니다
엉금엉금 고속도로를 기어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친구 찾아가는 그 마음은 급했지만
쉴새없이 차창으로 내리는 눈발 앞아세는 눈발에 갇혀
그냥 이대로 눈발처럼 쌓여가는 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지요
그렇게 하염없이 눈발은 날렸습니다
이윽고 청주의 명물 가로수 숲길을 지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그 시인을 만나
청주대 숲으로 갔습니다
정말 죽여줄 정도로 하이얀 폭설이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내려 숲으로 가는데
그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저 눈발과 조우했습니다
그 눈발들의 행렬을 바로보니 그들이 향하는 우듬지 끝에는
바람결에 소리없는 팔분음표의 눈발들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휘날리던 그 눈발
그 눈발의 환희......
마치 허공에서 물뿌리개질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저렇게 흔들면서 봄이 오는가 보구나 생각했습니다
봄은 저 나무 끝에서 흔들리며 오는가 보다
눈길을 걸으며 어릴 적 조무래기들의 세계로 돌아갔드랬습니다
시간의 숲길을 거닐며 오래도록 눈에 젖어갔습니다
젖어가며 사는 시간들
결국 우리는 인근 민속주점에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밤새도록 동동주를 퍼마셨고
얼어붙은 시내 눈길을 걸으며 숙취한 가슴을 깨우곤 했드랬습니다
그 눈발이 그리워
며칠 전 저는 그 숲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숲 응달에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는게 아닙니까
손꼽아 저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 봄이 오는것은
자기의 음지가 양지의 배경이 되어준 탓이라며
애써 그 마음 좀 알아들라는 듯 눈발 위에 햇살이 간간히 비쳤드랬습니다어째튼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그 추억이 언저리 여태 남아 있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잔설을 찬찬히 들여다 보노라니
들썩들썩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들썩들썩이는
후끈후끈거리는 그 무슨 소리가 분명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발은 녹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눈발 아래 뜨거운 대지가 눈발을 강력하게 흡인하는 그 무엇이 있는 듯 했습니다
그 땅 속 깊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봄으로 향하는
뜨거운 봄의 소리들이 눈발을 보듬고 진한 사랑의 애무 같은 것을 하고 있구나
그래서 저 욕정의 눈발이 후끈거리는구나 싶었습니다
눈발!
그렇게 질척이며 대지로 스며들어가는 것이구나
스며들어가 봄빛 찬란한 푸른 나무들의 엽록소가 되는구나
그래서
바람부는 날 저 나무가지들 저렇게 힘차게 흔들어쌓는구나
저 눈발이 허공에 푸른 잎을 틔우고
푸른 잎은 눈발처럼 허공의 여백으로 더욱 푸른 모습을 하는구나
그렇게 바람 찰랑이는 봄을 노래하는구나
아... 그 하얀 눈발이
저 푸른 창공에서 저렇게 흔들어대는 봄날이라니
그런 생각에 한참 머물다가
이 봄날이 어찌나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던지요
그렇게 정녕 봄은 왔나 봅니다
푸른 나물 푸른 꽃 푸른 나무들이
세상의 햇살 다 모아 온몸으로 흔들며
봄은 이토록 찬란하게 왔나봅니다
그런 찬란한 봄날입니다
그런 봄처럼 우리네 삶도 사랑도
푸르게 푸르게 무르익는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푸르름으로 흔들며 가는 나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정녕 봄은 왔습니다
봄의 강물소리가 세상 천지 철썩철썩이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흘러가는 봄의 강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여유 있다면 그 강물 위에 추억의 쪽배 하나 띄워
여름이 오기 전에 누군가에게 사랑 한스푼씩 건네며
마음 너그러우니 정겨운 눈빛의 봄바람 한 점 얹혀주며
여유로이 여유로이 흘러가는
그런 강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