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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다음 새 연재 [가장 높고 밝은 등대 선미도]

섬과 등대여행/서해안

by 한방울 2005. 8. 2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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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8일 (일) 12:37  미디어다음
가장 높고 가장 밝은 등대가 머금은 적막...'선미도'

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미디어다음 / 박상건 프리랜서 기자 

다소 멀어보이기만 했지만 요근래 부쩍 관광객이 늘어나며 훼손되지 않은 자연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인천 옹진군 덕적도. 올 여름에도 덕적도에는 꽤나 피서객이 몰렸을 법하다. 하지만 휴가와 해수욕 등 들뜬 기분을 덕적도에만 쏟아부어서일까, 덕적도 코 앞에 웅크리고 있는 선미도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을테다. 만약 그 곳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가장 밝은 등대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박상건 섬문화연구소장의 발길을 따라 선미도를 밟아본다. / 편집자 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가장 밝은 등대

선미도는 인천 앞바다에서 56㎞ 떨어진 해상에 떠 있는 섬이다. 행정소재지로 따지면 옹진군 덕적면 북2리에 속한다. 섬 모양은 땅콩 혹은 어릴 적 자주 먹던 꽈배기 과자 마냥 생겼다. 섬 면적 0.801㎡에 불과하고 해안선 길이는 7km이다.

이 섬에는 등대가 있다. 해수면으로부터 223m 높이, 절벽 위에 설치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등대이다. 이 등대는 1934년 석유 백열등으로 처음 불을 밝혔다. 1987년 12월에는 모터를 돌려 에너지를 뽑아 올려 불을 밝히게 됐다. 등명기는 등대의 불빛이 나오는 부분으로 이 곳의 등명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다.

 

 


그만큼 불빛도 강렬하다. 무려 31마일 해상까지 그 불빛이 가 닿는다. 멀리서 보면 작은 불빛이지만 서해 5도와 황해를 운항하는 모든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등대이다. 이 등대 불빛은 12초마다 한 번씩 반짝인다.

콘크리트 원통형 건축기술을 적용한 이 등대는 등탑 하부에 사각형의 사무실을 함께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다른 등대가 사무실을 별도로 만들어 놓고 있지만 이곳 등대원들은 사무실에서 바로 등대를 오르내리며 살아온 것. 일본 강점기에 설치된 초기의 등대들이 모두 이처럼 등대와 사무실, 숙소가 통합된 구조를 가졌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등대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2003년 8월에 과거 형태를 그대로 살리면서 사무실과 등대를 새로 신축하기도 했다.

어업전진기지이자 중국과 인천항의 관문

높은 절벽에 등대가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치고 들어올 때 산둥반도에서 이 쪽 뱃길을 타고 들어왔을 정도로 이 곳은 예로부터 인천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또한 선미도 앞바다는 밤낮으로 파시가 열릴 정도로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지금도 동북아의 물류 요충지, 군사요충지,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다하고 있다.

선미도는 오랜 동안 풍화돼 굳어진 퇴적암층이 바다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섬이다. 등대 보급선이 오가는 선착장 주변은 역암으로 돼 있다. 맞은 편 덕적도 본섬과는 500m 떨어져있다. 두 섬 사이 해협으로 흐르는 물살은 급격하게 소용돌이치는 지리적 환경을 타고 났다. 이 때문에 여러 선박과 낚시꾼들의 사고가 잇따르는 곳이기도 하다.

산세가 험하고 풍랑이 심해 암험도(惡險島)라 불렸던 섬이 선미도이다. 그런 이유로 등대의 필요성은 어느 섬보다도 절실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후 암험도는 “아름답고 착한 섬이 되라”는 뜻에서 선미도(善尾島)라고 고쳐 불렀다.

야생 사슴과 염소가 뛰노는 구릉을 낀 아름다운 섬

이 섬의 끝자락에는 어느 정원사가 잘 가위질해놓은 것처럼 소나무와 소사나무가 서 있다. 소사나무는 해풍에 강한 나무로 정원수처럼 크지 않으면서 아담하게 성장한다. 자작나무과로 잎이 달걀 모양으로 이 잎의 털이 복스럽게 몰려 있어 바람에 나부끼는 모양이 이채롭다. 소사나무는 인근 백아도와 남쪽 섬 거문도와 제주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섬 정상 8개 능성을 중심으로 혼합활엽수림이 우거져 있다. 해풍이 불어올 때마다 소사나무가 배때기 뒤집으며 흔들어대는 잎의 흔들림은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과 함께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또한 섬 가장자리와 해안가에는 목장 초지가 있다. 섬에 초지가 있다는 것은 목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섬의 목장은 그곳에서 군마를 길렀거나 섬사람들이 약초와 각종 먹거리 숲을 이용해 야생 짐승을 길렀다는 흔적인 것이다. 현재 서식하는 식물의 종류는 279종. 참취, 큰까치수영, 방아풀, 제비쑥, 고사리, 꼬리풀과 큰천남성 군락지가 있고 중국 쪽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종되는 외래종도 있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외딴 생가 이야기

이 섬에는 몇 년 전까지 홀아비와 딸이 살고 있었다. 덕적도 일대 무인도가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섬에 물이 없다는 점이다. 덕적군도 중의 하나인 선미도에는 물이 좋다. 이는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섬의 특징 탓으로 보이는데 억겁의 세월 속에서 모진 파도와 비바람을 맞으며 숭숭 뚫린 퇴적암은 정상에서 흘러온 빗물을 층층이 받아 안으로 축적할 수 있는 풍화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

섬에서 물을 구하는 방식을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빗물이나 바닷물을 걸러 마시는 일이요, 두 번째는 정상에서 흘러나오는 수맥을 찾아내 그것을 저장하여 마시는 방식이다. 섬에 가면 바위 위에 시멘트를 쌓아 옹달섬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닷물이 아니라 수맥 끝을 찾아 거기서 터져 나온 물을 저장할 줄 아는 섬사람들의 지혜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처럼 자연은 때로 연약한 사람들의 발을 묶고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인들에게는 첨단과학도 해결하지 못하는 삶의 지혜를 일러주기도 하는 것이다.

물이 있기에 이 섬에는 몇 년 전까지 홀아비와 딸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외딴 섬에서 사는 일은 고독함과 문화적, 경제적 소외였다. 토종돼지, 염소, 꽃사슴, 토끼를 가족의 일원으로만 삼아 살던 중 홀아버지는 이승을 떠났다. 이런 아들과 딸에게 해방구는 교통의 편리였다. 그들은 뭍으로 나와 살고 있다. 이따금 고향 섬이 그리우면 홀로 남은 집과 짐승들을 돌아보고는 홀연히 그 섬을 떠나오곤 한다.

짐승들만이 그 빈집을 지키면서 결국 야생짐승이 되어 그들만의 종족보전의 길을 걷고 있다. 벼랑 끝 바위 위에 올라 먼 바다를 응시하는 염소와 사슴을 보면 그들도 그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세월을 맞고 보내고 있음을 생각한다. 이제는 사람들의 손길에서 벗어나 길들일 수도 없을 만큼 민첩하고 전투적인 기질로 변한 야생 짐승들은 그들만의 천국으로 이 섬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섬에는 가마우지, 까치, 노랑할미새, 흰뺨검둥오리가 살고 특히 겨울철이면 멸종위기야생동물로 천연기념물 제243호로 지정된 참수리 여섯 마리가 겨울나기를 한다. 해안가에는 손으로 휩쓸면 한주먹씩 잡힐 정도로 수많은 고동이 나붙어 있고 게들이 기어 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청각과 다시마 미역이 무더기로 서식 중이다. 낚시꾼들은 이 일대 갯바위 낚시로 우럭과 노래미를 한 뭉치씩 잡곤 한단다. 선미도는 그렇게 적막하고 외로움과 그리움이 물결치고 야생 식물과 동물이 등대 빛과 함께 깜박이는 정서적 고향의 섬으로 지금도 출렁이고 있다.

선미도로 가는 길

1. 대중교통
삼화고속 직행버스(서울역, 신촌, 합정동, 양평동)→인천 연안부두(1시간 소요) 지하철(1호선 동인천역 하차→인천항(12번, 24번 시내버스, 35∼40분 소요)
2. 배편
인천 연안부두→덕적도(1일 3~4회 쾌속선 50분소요. 승용차 선적 불가)→선미도(사선)
대부 방아머리→덕적도(1일 2회 철부선 1시간 30분소요. 승용차 선적 가능)→선미도(사선)
3. 배편 문의
우리고속훼리(032-887-2891~5)/진도운수(032-888-9600)
인천항여객터미널(1544-1114)/대부항여객터미널(032-886-3090)
선미도 사선 문의 새마음연수원(032-832-3364)
4. 덕적도 내 교통문제
배 운항시간에 맞춰 마을버스 운행, 민박집 봉고차량 수시 운행 / 주유소(농협주유소) 있음, LPG충전은 불가
5. 선미도 정기여객선은 없음으로 덕적도에서 하룻밤을 자고 한나절 정도 사선으로 돌아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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