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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에 숨어 있는 해안, 팔봉

섬과 등대여행/서해안

by 한방울 2005. 8. 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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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가로림만-구도포구-고파도로 이어지는 이색코스


서산에 가면 팔봉이라는 작은 면이 있다. 인구는 고작 3천 여 명. 뒤로는 여덟 개의 산줄기가 뻗어가는 국내 100대 명산 중 하나인 팔봉산이 있고, 그 산줄기 아래로 날아가는 새의 나래짓 소리도 들릴 정도의 적막하고 평화로운 들판이 이어진다. 


그 들판이 마지막에 향하는 곳은 어느 한량이 부채질하듯 고요한 물결이 이는 가로림만. 태안반도를 향해 흘러가는 물결은 좌우로 반도가 바람막이를 하고 서 있어 남성적인 동해와는 사뭇 다른 여성스러운 바다 풍광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로림만이 마냥 순진한 해협만은 아니다. 썰물 때는 당진 쪽에서 흘러오는 물살이 계곡물 흐르듯이 급속히 물살을 휘어가며 흘러간다. 밀물과 썰물의 낙차가 큰 탓이다. 알고 보면 이것도 관광 상품이다. 조력발전의 원리가 이런 해류를 이용한 것이고 바다는 마냥 수평선으로 향해서 밀려갔다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수심의 원동력으로 소용돌이치며 흐른다는 해양 생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온한 바다에서 쾌속선을 타고 달리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장관이다. 바다에서 이는 파도는 바로 이런 수심의 원동력의 힘과 바람에 의해 파고가 높았다가 낮았다가 한다.


팔봉산에서 들판 가로질러 가로림만에서 첨벙첨벙하는 팔봉의 정기

그렇게 팔봉산 산자락이 가로림만으로 첨벙첨벙 들어가 함께 철썩이는 땅 팔봉. 이처럼 팔봉은 전통적인 반농 반 어촌이다. 바다에 나가 일하는 사람이 있고 들녘에 나가 일하는 사람이 공존한다. 봄과 가을에는 농업에 종사하고 여름과 겨울에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농촌과 어촌의 문화가 어우러져 있는 천혜의 땅인 셈.


그러나 팔봉의 실상은 다르다. 그 천혜의 혜택을 경제적 가치로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위로는 당진과 대산 주변 대호방조제, 왜목마을, 도비도, 삼길포 등에 이미 관광객이 넘나들고 있는 지역이 포진하고 있다. 옆으로는 아산, 홍성, 공주 그리고 아래로는 부석사가 있는 부석면, 천수만과 간월도가 있는 고북면, 그 옆으로 해미읍성의 해미면 등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시군이 버티고 있다. 이들 지역들은 죄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그 연결망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팔봉은 이에 견줄만한 명성이 아직 없다. 그러나 태안반도로 넘어가는 일몰을 보는 순간, 이곳이야말로 작가들의 창작무대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인구 60 명뿐인 외딴 섬 고파도로 넘어가는 노을 광경과 가로림만, 팔봉 들판은 전형적인 근대화 농어촌의 풍경이다.


산업화와 현대화에 걸 맞는 섬과 바다도 많지만 북적이는 곳이 싫어 원시적이고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여행지를 갈구하는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은 흔하지 않다. 그런 곳을 찾아 목매였을 사람들에게 팔봉은 평화의 땅, 여전히 원초적 고향의 정서가 꿈틀대는 땅이다.

숨어 있는 땅을 여행명품으로 키우는 여성면장의 열정

지난해 1월 충청도 유일한 여성 면장으로 취임한 한연숙 면장은 “있는 그대로 천연의 농어촌으로 특화시켜 섬과 바다, 농촌에서 전해오고 있는 삶과 풍경을 특화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이렇다 할 명소를 갖지 못한 가난한 자치단체들의 공통 고민거리이겠지만 전통 농어촌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살아있는 농어촌 상품을 발굴,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경영마인드의 기초는 ‘비교우위 경쟁’. 자본으로 그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우리나라 자치단체 중 자립도마저 위협받는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이랴.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나라처럼 문화자원이 많은 나라도 없다. 일본 산골마을 오에정은 인구가 고작 6천명. 그러나 연 관광객들은 그 마을 인구수를 넘어섰다. 마을의 전설인 도깨비를 문화자원으로 하여 매년 ‘도깨비 축제’를 열며 특산품도 함께 판매한다. 얼마나 문화자원이 없었으면 전설을 문화상품으로 개발했을까.


그런가 하면 인구 2천 7백 명이 사는 구기노 농촌은 우리나라 국립박물관 수준인 메일박물관을 원통형 1층 건물로 지어 면 사무소와 나란히 지어 놓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한 것과 유사한 특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특제품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메밀찐빵, 메일간장, 메밀어묵, 메밀 아이스크림, 메밀떡 등이다. 분명한 것은 이곳 농부들이 심고 일군 그리고 직접 만든 메밀 특산품이라는 것과 관광 홍보자료를 국내판과 해외판으로 구분해 조직적으로 홍보전을 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관광객들이 직접 만들어 보는 코너를 마련해 체험과 막과 멋에 동의한 여행객들이 가져갈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 수는 연간 1백 만 명. 우리 돈으로 환산할 경우 20억원을 관광 수입으로만 벌어들인다.


한연숙 명장은 이 농촌 경영에 주목한다. 그이는 지난 6월 ‘감자축제’를 열었다.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고 팔봉의 주산품인 감자를 많이 팔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감자로 대형 탑을 쌓고 각종 농악놀이, 감자 길게 깎기 대회, 감자중량달기, 팔봉산등산대회, 감자떡 만들기와 감자캐기 체험 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바다와 들에서 자란 것과 풍경을 맛과 멋으로 특화

그런 축제의 공간에서 도시에 나간 출향한 고향사람들이 돌아와 함께 어울리고 도시민도 농어민과 어우러져 농경문화와 우리 농산물에 대한 맛과 멋을 체험하게 했다. 그이는 “그저 보여주기 위한 행사였다면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면서 “서늘한 해양성 기후에서 자라 맛과 품질이 좋은 농산물을 자랑스럽게 내놓았고 청소년에게는 인스턴트 식문화에서 벗어나 우리 자연의 신비로움을 체험하는 현장을 제공했다”라고 말했다.


그이는 일회성 축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통공예방을 만들어 항아리 빗기, 무쇠솥에 장작더미 태우기, 칠면조와 거위, 오리, 토끼와 풀밭을 겸비해 식물과 동물 체험장을 만들었다. 식사는 당연히 감자로 빚은 수제비를 내어 놓았다. 갈고 갈아 감자 빛이 아예 투명한 빛을 내고 쫄깃쫄깃한 그 맛에 요리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방송사 취재도 이어졌다. 간식거리는 호일에 쌀아 정적더미에 구운 감자와 논바닥에서 기른 미꾸라지 튀김, 바다에서 잡은 소라와 고동무침이었다.


식사를 마치면 여행객들은 들판에 나가 그런 자연산 미꾸라지를 잡기와 논두렁을 구경하고 탁 트인 구도포구로 가서는 바다를 구경한다.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낚시꾼을 실은 작은 배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어느 항구에서 거대한 컨테이너선과 쾌속선을 보던 사람들에게는 정겨움과 그윽한 그 옛날 어촌의 모습 그대로이다.


폐교를 콘도형 연수원으로 다듬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갯벌체험과 농촌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배를 타고 외딴 섬에 들어가 바지락도 캐고 낚시를 할 수 있도록 이장들과 연계해 나갔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그이가 제시한 프로그램에 따라 섬 여행을 해보았다. 여러 먹거리와 즐기는 데 목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고 싶은 사람들, 시끌벅적 않는 해안에서 낚시를 하고 물놀이를 하고 삐비꽃도 뽑고 산딸기를 따먹으면서 조용히 레저를 즐기려는 사람들, 맑은 공기와 황토길 향기로운 흙 내음과 풋풋한 풀내음을 실은 바람결에 젖고 바닷가의 노을에 젖고 싶은 사람에게는 동화 책 같은 팔봉의 바닷가 풍경에 빠지는 게 좋다.


섬인데도 깊은 산 속에 들어선 듯 새소리가 들려오고 산숲 새소리인가 싶으면 다시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원두막에 드러누워 있노라면 도체 도심으로 되돌아가기가 싫다. 저 푸른 하늘의 구름처럼 해무처럼 그저 흘러가는 세월에 맡겨두고 살고 싶어진다.


자꾸만 루소가 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는지를 되새김질 하게 한다. 세상이 자꾸 변할수록 사람은 자연으로의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처럼 테마가 있는 여행은 그 마을만의 특색을 담은 축제와 자치단체의 행정과 관광이라는 패러다임을 바꿔놓게 하고 있다. 체험과 정서적 교감 없는 여행은 그저 관광일 뿐이다. 내 삶을 살찌우고 정서적으로 카타르시스와 삶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없다면 그 여행은 속빈강정이다.


여행객들을 움직이는 말, “친절은 가끔 이자를 붙여 되돌아온다”

문화는 그 사회의 작동원리이다. 여행은 그 문화의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아무리 편하고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인위적 문화 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문화가 오래가기 마련이다.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본디 세상에는 애당초 새로운 것이라는 것은 없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정서적인 힘이다. 여행이 그런 힘을 발견하고 일깨워 가는 것이다. 많은 섬 여행에서 얻은 결과이다.


섬으로 가면서 구도포구에서 만난 주부 김명림씨는 “너무나 조용한 마을에 외지인이 오면 언니(면장)의 안테나에 걸리기 십상이죠. 언니는 면장이라기보다는 팔봉의 큰 언니”라면서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전통 농어촌문화 발굴에 애를 쓰고 누구든 부담없이 나서서 안내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렇게 친절은 이따금 이자까지 붙어서 되돌아온다. 영국 경제학자 스미스의 말이다. 친절은 휴머니즘의 연장선에 있다. 휴머니즘과 자연주의가 어우러질 때 진정한 감동이 꽃피고 파도치기 마련이다. 문화와 친절. 이것이 어우러져 섬과 바다, 농촌을 보듬고 출렁이는 그런 팔봉이 진정으로 일본의 구기노 농촌을 뛰어 넘는 세계적인 농어촌 문화마을로 발돋움하기를 바람하며 귀경 길에 올랐다.


● 팔봉으로 가는 길

1. 승용차

서울→서해안고속도로→서산IC→32번국도→서산→팔봉

서울→경부고속도로→천안→예산→해미→덕산→서산→팔봉

2. 대중교통

서울 남부터미널→서산버스터미널→팔봉

3. 문의

팔봉면사무소(041-662-6300)/서산버스터미널(041-665-4808)

전통음식체험장(041-662-6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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