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43] 호수 같은 바다 해무가 그린 수채화의 섬, 고파도
원시의 삶과 휴머니즘이 고프거든 고파도로 가자
태안반도와 서산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파도가 그 해협에서 철썩철썩 끌어 당겼다 풀었다가를 반복한다. 그렇게 떨어진 듯한 그 간격을 푸르게 물결치며 한반도 중서부의 동맥으로 잇고 있다.
고파도로 가는 길은 이 해안선에서 시작된다. 해안선에는 임해공단이 들어서 있고 다시 돌아서면 어촌과 양식장이 있다. 공단이나 고깃배나 통통대는 것은 매 한가지로 이 바다에서 생동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밭을 매는 아낙처럼 허리를 숙이는 산줄기는 풍요로운 들판으로 내려와 다시 그 들판은 바다로 나지막이, 살며시 흘러들어간다. 첨벙첨벙 들어가 파도를 소리높이 외치며 그 혈맥은 마침내 섬으로 일어서고 있다.
통~통~통 똑딱선을 타고 가로림만 가로질러 간 섬
그렇게 태안반도 앞 바다에 우뚝 선 고파도는 본디 태안군에 소속되었다가 1914년 법정 마을로 분리돼 서산시 팔봉면의 한 일원이 되었다. 고파도는 구도포구에서 정기 여객선으로 45분이 걸리는 거리에 있다. 팔봉산 자락의 아름다운 풍광에 빠져 지내다가 여객선을 놓치고 말았다.
포구에서 안타깝게 부서지는 물보라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민박집 주인장이자 고파도 이장이 개인 배를 이용해 태우려가겠노라고 전갈이 왔다. 그이는 밤중에도 여객선을 놓치거나 급한 일이 생긴 섬사람들을 뭍으로 태워다주는 일을 자청하는 정이 넘치는 섬사람이었다.
그렇게 구도포구에서 하염없이 머리카락 휘날리면서 바다를 내달렸다. 통통대며 파도를 타는 작은 배의 출렁임. 그 리드미컬한 기분을 어찌 다 표현하랴. 마음껏 함성도 내질러 보았다. 이내 고독한 섬들이 지나면 다시 말문을 닫혔다. 작은 섬들만 보면 그리움 혹은 외로움에 젖어드는 게 인지상정. 바다에 온몸에 적시며 흡착흡착 숨을 내쉬는 섬. 그렇게 푸른 숲 그늘을 키우는 섬의 자태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정기 여객선으로 45분 거리를 15분 만에 도착했다. 해무에 갇힌 고파도 풍경이 벌써 이방인들에게 추억의 비밀을 들이 내밀고 있었다. 고파도는 파지도, 옛파지도, 고파지도 등으로 불리어 왔다. 그 유래는 ‘바자’에서 연유되었다. ‘바자’라는 것은 대, 갈대, 수수깡 등으로 엮은 발을 일컫는다. ‘발’이라 함은 요즈음 그물을 이용한 양식방식 이전에 갈대 또는 왕골, 시누대나 큰 대나무를 깎아 그물 대용으로 엮어서 해안 주변에 설치했던. 그것을 ‘발’이다. 그 ‘발’에서 ‘바자’가 유래되었다.
어릴 적 추억이 그대로 출렁이는 섬
생각해보니 어릴 적 바닷가의 추억이 떠오른다. 나뭇가지를 꺾어 바위틈에 갖다 놓으면 그곳에 김이나 미역이 밀려와 걸려들었다. 썰물에는 꽃게를 잡기 위해서 개구리 다리나 고동을 까서 매여두면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오다가 섬 소년에게 그대로 걸려들곤 했다. 어쩜 어른들의 바자양식 방식을 곁눈질로 응용한 지극히 원시적이지만 고고했던 유년의 추억거리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그렇게 고파도는 ‘바자섬’으로 불리다가 ‘바지’라는 방언으로 바뀌어 ‘바지섬’으로 불리었고 이를 한자로 ‘파지도’라고 표기하게 된 것이다. 이를 줄여 ‘파도’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고려 때 ‘고파도(古波島)’라고 불렀다. 고파도에는 ‘고파도성’이라는 고려 때 흔적이 남아 있어 문화재ㅔ로 지정돼 있다.
고파도(古波島). ‘높을 고(高)’가 아닌 ‘옛 고(古)’이다. 어쩐지 고풍스럽고 예스러운 느낌을 갖게 한다. 예스러운 파도라? 승무를 치는 여인상처럼 혹은 춤추는 갈매기처럼 물결 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음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태안반도와 천수만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환경 탓에 바람이 적은 섬이 고파도이다. 늘 잔잔한 바다는 그래서 호수 같다.
고파도에는 30가구에 60명의 어민들이 살고 있다. 해안선 길이 4.5㎞. 백사장 길이도 500여 미터에 불과하다. 작아서 아름다운 섬 고파도. 1백만 인파가 모였느니, 올해 처음으로 2백여 인파가 모였느니 떠드는 그런 해수욕장이 아니어서 더더욱 좋은 섬이다.
차분히 자신을 뒤돌아보는 원시의 여행코스로 적격
그러니 생각하는 여행, 차분히 자신을 뒤돌아보는 여행, 정겹고 알뜰한 가족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섬이다. 어릴 적 고향 바닷가 추억과 콩, 옥수수, 고추, 오이 등 농촌의 싱그러움과 평화로움으로 공간으로 재현해주는 섬이 고파도이다.
때마침 섬 기슭에 해무가 펼쳐지고 있었다. 학들의 군무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열기가 있는 한여름 바다 탓에 해무는 바다를 거닐다가 이내 섬 기슭으로 이동 중이었는데 마치 아주 오래 된 담채화나 수묵화, 수채화를 파노라마처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자연이 연출하는 이 위대한 풍경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방인의 찌들려 자욱한 일상의 먼지들마저 빨래질하여 질질 짜내고 있는 듯한 해무. 때로 누군가에게 저렇게 스스로 젖어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서로가 먼저 두 팔을 벌려 어서 오라는 속마음처럼 우리 스스로 젖어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저 위대한 포옹은 자연과 자연이 교배 중이거나 서로 뜨겁게 타오르다가 그 뜨거움에 멈춰 서 버린 클라이맥스 같은 것일까? 아니면 묵언으로 일러준 대단원의 장막을 그저 하얗게 이방인의 상상력으로 남겨두려는 것일까? 아무튼 한동안 백색 풍경에 빠져 밤길 돌릴 줄 몰랐다. 저것이야말로 자연이 일러준 여유와 배려의 산수정신이 아닐까 싶었다.
파도타기와 태안반도로 지는 일몰의 장관
민박집에서는 삶아준 고동을 간식거리로 먹고 마을 등성이 넘어 백사장으로 갔다. 백사장으로 가는 길에는 산딸기, 삐비꽃, 해당화 군락지 등 꽃향기와 아련한 시골길이었다. 울타리로 삼고 있는 시누대밭은 살랑거리는 갯바람을 쓸어 넘기고 있었다. 둑길을 넘어서자 바로 바다가 열렸다.
푸른 파도 앞에서는 체면치레가 무엇이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바다로 뛰어 들어 파도타기를 했다. 서서히 물이 나간 바다에서는 조개와 고동잡기를 했다. 고파도 해변은 밀물이면 모래톱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썰물 때는 모래와 갯벌에 지천으로 깔린 고동과 모시조개, 바지락을 잡을 수 있다. 앞 바다에서는 우럭, 놀래미, 농어,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이윽고 노을이 졌다. 굴 양식장 바지랑대 위로는 어느 상갓집을 다녀오는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르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참으로 구슬펐다. 그렇게 서서히 태안반도 쪽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서해의 일몰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그것은 일대 장관이었다.
노을에 타들어가던 뻘밭 모습을 보노라니 동학혁명 때 죽창 들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숨죽여 뻘밭 짓이기며 살던 사팔뜨기 게들과 미물들의 몸부림 혹은 함성이 나지막이 내깔려 오는 듯 장엄하기만 했다. 맞은 편 분점도와 우도라는 고파도 새끼섬들도 이 노을에 젖어들었다.
노을이 넘어서고 민박집으로 돌아와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모습에 한동안 빠졌다. 어둠이 내리고 하룻밤의 추억이 깊어가는 시간에 해안가 파도소리, 구멍가게 불빛과 초소 불빛 그리고 밤하늘의 별빛만이 적막한 바다를 깨우고 있었다.
형은 이장이 되어 섬사람의 눈이 되고
날이 밝자 아침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갔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배웅 나온 고파도 이장 김기운(61)씨와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이는 6대째 이 섬에서 살고 있다. 높은 파도를 만나 고생께나 하며 살았지만 화목한 가정과 사는 데 모자랄 것 없는 수입, 그리고 인정 많고 평화로운 고파도가 마냥 좋다고 했다.
그이에 따르면 고파도는 본디 굴이 많이 생산되는 섬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집집마다 종패(굴 종자)를 양식하고 굴을 까기에 분주했고 바닷가에는 작업하고 난 굴 껍데기들이 수북이 싸여있었다.
“지금이야 교통이 괜찮은 편이지만 옛날에는 굴을 따서 팔봉면 흑석리까지 목선을 타고 가야 했죠. 조류가 심할 때 목숨을 오직 하늘에 저당 잡혀야 했죠. 배에서 내리면 다시 지게에 굴을 짊어지고 몇 개의 산을 넘어야 서산 오일장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고파도 굴 맛만은 알아줘 벌이가 늘 괜찮았어요.”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거의 모든 집이 바지락 양식을 할 정도로 바지락 붐도 일고 있는데 속이 꽉 차고 씹히는 맛이 좋아 고파도 생산품을 알아준다.”는 것이다.
이윽고 이 섬사람과 동고동락하는 작은 여객선 ‘새마을호’가 갈매기 몇 마리를 뒤에 달고 선착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객선에서 방파제로 내려주는 나무 사다리가 이채로웠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탓에 바닷물 높이에 따라 댈 수 있도록 좁고 길게 만든 것이었다. 섬 주민들도 적고 찾아오는 이도 적은 탓에 선원들이 이동 매표기구를 들고 방파제에 내려와 표를 끊어주는 풍경도 외딴 섬만의 풍경이었다.
인적이 드문 고파도에서 나온 사람들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배도 외롭고 섬도 외롭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통~통~통 검은 연기를 내뱉는 여객선과 포구에서 서로 손을 흔들며 서 있는 우리들과 이장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아우는 선장이 되어 섬사람의 발이 되고
얼마 후 선장실로 가서 사진 한 장 찍겠노라고 하는데 이게 웬걸? 이름이 비븟해 물어보니 선장은 고파도 이장의 동생이었다. 김기송씨(45). 10년째 구도와 고파도 사이를 항해 중이다. 형제가 고파도의 눈이 되고 발이 되어주고 있는 것. 기름값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적자운행 중이지만 대대로 섬에서 태어난 섬사람이니 섬사람을 위해 이 정도 봉사하는 일은 당연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시 객실로 내려서자 깨알만한 글씨로 운임표가 붙어 있었다. 시멘트 한 포대 200원, 조개자루 한 포대 1,000원, 멸치 한 포대 500원, 비료 1포대 500원, 젓갈 통 1,000원, 생선다라 1개 500원, 쌀 20㎏ 한 포대 500원, 주민 1인당 2,500원 등등. 도대체 어느 정도 살림살이를 더 실어야 1만원어치 정도를 실을 수 있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요금이 많이 올라갈수록 주민들도 새마을호 여객선의 벌이도 동반 상승한다는 사실. 모두가 잘 살아야 나도 잘사는 세상. 진정 그 길이 아름다운 세상임을 이 요금표는 웅변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윽한 섬, 정다운 섬사람들이 사는 섬, 고파도. 아련한 추억이 고프거든, 사라지는 자연주의와 휴머니즘이 고프거든, 그리고 일용할 삶의 양식이 고프거든, 아무튼 그 무엇이 고프고 고파도 꼭 한번, 고파도에는 가 볼 일이다.
● 미니상식/가로림만에 대하여
가로림만은 충남 북서쪽 해안에 있다. 구도포구에서 고파도를 가는 바다가 바로 이 가로림만이다. 배를 타고 가다보면 썰물 때 급속히 물살이 휘어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모습이다. 가로림만의 길이는 25 km, 너비 2~3 km이다.
태안반도와 천수만 사이 이 물줄기를 보는 것은 섬 여행의 스릴과 해양 생태 여행의 체험이 무엇인지를 실감시켜 준다. 물 흐름은 밀물과 썰물의 수위차가 심해서 생긴 현상이다. 이런 급류의 낙차를 이용하는 것이 조력발전이다. 현재 세계적인 조력발전소로는 400Kw를 생산하는 프랑스의 랑스, 소련의 키슬라야(800Kw), 캐나다의 아나폴리스(2만Kw), 중국의 지앙시아( 3,000Kw)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천만, 아산만, 가로림만, 천수만 등이 조력발전으로 적합한 지역이다. 조력발전은 막대한 건설비와 일정 시간대 간만의 차이가 멈춰서 이용이 어렵다는 부정적 주장과 기술 급진전과 함께 화석 연료가 바닥나 조력발전이 그 대안이라는 불가피론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제 일제 때 경기만 일대에서 조력발전 설계도를 만들었던 기록이 있고, 1986년 영국의 조사 결과에서 가로림만을 조력발전소로 만들 경우 40MW이라는 어마어마한 천혜의 에너지를 뽑아 올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
● 고파도로 가는 길
1. 승용차
서울→서해안고속도로→서산IC→32번국도→서산→팔봉→구도 선착장→고파도
서울→경부고속도로→천안→예산→해미→덕산→서산→팔봉→구도 선착장→고파도
2. 대중교통
서울 남부터미널→서산버스터미널→구도 선착장(1시간 간격 운행. 40분 소요)→고파도
3. 해상교통
구도 선착장→고파도(1일 2회 운행. 45분소요)
4. 문의
선우해운(041-934-8774)/팔봉면사무소(041-662-6300)/서산버스터미널(041-665-4808)
고파도 이장댁(041-662-1696)/고파도 초소(041-662-2496)
글․사진: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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