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그렇게 꽃이 진다
저녁 무렵 봄비가 내렸다. 도시에 살면서 봄비의 맛을 우려낼 수 있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분주히 살아가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면 반사적으로 우산을 사들고 지하도 건너고 버스를 타고 혹은 택시를 잡아타고 서둘러 귀가한다.
4.19에 내리는 봄비 탓이었을까? 문득,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가 떠올랐다.
“껍데기는 가라/4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라는.
그 껍데기를 벗고자 목련꽃도 저렇게 지는 것일까? 카페 창가에 앉아 가로수를 바라보았다. 버드나무 새순들이 유난히 파랗게 반짝였다. 빗줄기가 끌어 올리고 있을 저 순간의 열정. 새순은 그렇게 물오르고 있을 것이다. 저 푸른 잎도 결국은 헐벗은 나무로 서 있게 될 것을 알 터인데, 결국 꽃은 지기 위해 피는 것인가?
한 방울의 빗방울이 보여준 무조건적 사랑의 의미
산 넘고 강 건너 예까지 왔을 저 허공의 빗줄기. 우산 받쳐 들고 무언가에 쫓기듯 걷는 고독한 현대인들이 발 딛고 선 이 풍진세상 굽어보며 사선을 긋고 있다. 세상을 너무 건조하게 살지 말라며, 빗줄기는 이 봄날 저녁을 축축이도 적시고 있다. 밤새 논에 물을 대던 농부처럼 먼지 자욱한 거리 구석구석까지 다가가 빗줄기는 살며시 그리고 비스듬히 눕는다. 이 땅의 모든 것을 적시고 싶은 저 깊고 깊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아라.
거리는 갈지자로 흩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그 뒤안길에서 저린 허리를 다독이며 눕던 할아버지의 저녁처럼, 빗줄기 비스듬히 눕고 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식구들처럼 아스팔트 한 모서리에 자운영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사이좋게 어깨 걸고 그렇게 도시의 밤길을 밝히고 있다.
문득 봄비의 풍경이 고향의 봄비 내리던 풍경을 떠올려주었다. 봄비 내리는 산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포도에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비료포대 찢어 걸치고 논물을 대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봄비 내리던 날 논물 대던 할아버지의 기억
그 논두렁 곁에서 동요를 부르며 도랑물을 손으로 받아먹던, 씹어 먹던 그 물맛이 그만이었던 기억이 봄비처럼 바람에 일렁인다. 봄 비 내리던 날의 그 벌판으로 나의 생각을 물고 길게 이어지는 빗줄기. 빗방울이 꽃들을 적셔가는 모습이 그 도랑물 방울방울 파장 일며 흐르던 기억처럼 새롭다. 답답하고 괜스레 외롭고 슬퍼지는 불혹의 이방인의 가슴에 그렇게 빗줄기가 축축하게 적셔온다.
빗줄기는 이내 물길 따라 지느러미질을 쉼 없이 하던 피라미 떼처럼 스멀스멀 내 가슴으로 기어들어와 한 물결이 되어 아름다운 동행자가 되어준다. 그런 그리움의 전령사이자 화신이 봄비이다. 허공에서 빈 가슴으로 하얗게 반짝여 다가온 빗줄기는 어느새 서성이는 나의 마음을 다독여 데불고 차곡차곡 봄날의 대지를 적시고 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어 강물이 되었다. 내 가슴도 강물처럼 출렁이고 희끗희끗 일렁이는 유년의 기억을 따라 강둑 거닐 듯이 이 한 세상 한복판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맨 처음은 늘 미약하였듯이 저 한 방울의 빗방울도 이슬처럼 어느 이름 모를 산모퉁이에 서 있을 한 그루 나무에 이슬처럼 맺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뚝, 뚝 지면서 숲의 밑뿌리를 적시고 텅 빈 계곡에 물소리를 울리면서 노자나 장자에게 사색의 모티브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빗줄기는 한권의 책이 되어 사계절 사람의 마음을 적신다
비가 그치면 그 물소리 지나간 빈 자리에 다시 새소리가 가득하고 꽃 지고 잎 지는 소리가 남을 것임을 알면서 미련 없이 이 산하를 흘러갔을 것이다. 그렇게 이 산하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책장을 넘기며 살아있는 삶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의 책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인생은 한권의 책을 쓰는 일이고 우리는 매일 한 페이지씩의 삶을 쓰는 일일 터. 온몸으로 아무 일 없는 듯 그렇게 일상의 텍스트로 한 생애를 기록해 가는 인생을 빗줄기는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그렇게 어느 산자락을 타고 내려왔을 빗줄기. 그 빗줄기가 이내 큰 강물을 이루어 철썩철썩 힘차게 이 푸른 봄날의 들녘을 흘러간다. 나도 이 한 세상 한복판 그렇게 흘러가는 강물이라는 기분 좋은 착각에 첨벙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리움 혹은 소망을 피어 물고 빗님이 내리시는 봄이다.
이슬비는 더욱 굵어져 주룩주룩 창틀을 타고 흐른다. 녹슨 창틀에 고인 찌꺼기들은 우리가 버려야 할 욕망의 상징어로 와 닿는다. 우리가 묻힐 흙무덤의 오래된 기억의 부산물처럼 다가선다. 빗줄기는 그 녹슨 창틀에 고였다가 그 티끌을 보듬고 어디론가 흘러간다. 알고보면 빗줄기는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삶의 상징어이다.
그렇게 어디론가 흘러가면서 내 마음의 창틀에 고인 흔적들도 휩쓸려 감을 느낀다. 묵은 것들이 사라져 가는 사이에 어느 이름 모를 묘지의 풀 한포기도 적시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빗줄기는 이승과 저승의 가교자라는 생각에 이른다.
빗줄기와 햇살의 만남, 자연의 위대한 조화
모두가 빗줄기를 통해 파랗게 일어서는 그런 봄날이다. 행복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버 빗줄기의 부지런한 움직임에서 읽는다. 행복은 거저 떨어지는 것이 열매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동안의 감정의 조절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내가 나를 다스리는 그 여부에 따라 행복의 열매를 따기도 하고 상실을 아픔을 맛보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산다는 일은 그러니 누굴 탓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다가가 적셔드는 빗줄기 같은 것이다. 내가 먼저 만든 사랑으로 누군가의 가슴을 적실 수 있다면 그것이 순수하고 창조적인 행복이 아니겠는가. 비에 젖은 창틀에는 언젠가 바람이 불 것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워갈 것이다.
마치 어느 강가에 소복차림의 한 여인이 뿌리던 그 가루처럼, 우리는 이 땅에서 곧 멈출 봄비처럼 인연의 고리를 흙에 묻을 것이다. 강물에 뿌리며 작별할 것이다. 빗줄기는 그렇게 슬픔의 상징어이면서, 기쁨의 햇살과 동행하는 자연의 위대한 생산품이다. 이 비 그치면 녹슨 창틀에 남은 슬픔과 절망, 혹은 고독의 흔적을 빛나는 햇살이 탈탈 털어서 말려줄 것이다. 그 햇살은 삶의 환희의 상징어이다. 비와 햇살 사이에는 인간의 희노애락과 고진감래의 담론이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비와 햇살의 극과 극이 아니라 1막1장의 자연이 연출해내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휴먼 다큐 같은 것이다. 마치 어느 노스님의 사리처럼 빛나던 빗줄기가 창틀에 끼인 녹슨 부스러기에 젖어 들어가 청동가루처럼 햇살에 톡, 톡 튀면서 빛나는 것을 보아라. 그것은 자연의 위대한 조화이며, 인생의 슬픔과 기쁨의 찬란한 만남의 상징어인 셈이다.
손바닥에 빗물을 받아 놓고 나를 읽는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그런 빗줄기를 한 움큼 받아든다. 내 삶의 부스러기들을 하나씩 세워 보는 동안 내 손바닥에 빗물이 샛강처럼 갈라진 손금을 타고 흘러간다. 그 손금의 강줄기를 따라 먼 훗날의 희망을 그려보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리라.
그런 내일을 길모퉁이를 향해 진달래와 자운영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그 거리 한 복판에서 내 마음의 정원에도 이 봄비를 뿌리고 싶다. 내 마음에도 아름다운 꽃밭, 마음의 꽃밭을 만들어 빗줄기를 맞고 싶다. 빗줄기에 젖어들고 싶다.
그 꽃밭에 찬란한 봄날의 꽃 한 송이가 피기를 소망한다. 언젠가 꿈 한 송이가 폭죽처럼 이 세상 한복판에서 터지길 기다려 보는 것이다. 기다라며 그리워하며 먼 훗날의 봄 길을 향해 끝없이 걸어가고 싶은 것이다.
그 거리에도 청초한 꽃들이 피어 있길 소망한다, 내 마음의 꿈 한 송이를 위해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나 다시 아침이 오고 창가에 서 있다. 빗줄기는 여전히 무심하게 내리고 있다. 무심으로 사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 비 그치기 전에 작설차 한 잔 우려 놓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작설차 한 잔 놓고 음미하는 자아와 자연의 오묘함
저 빗방울에 적셔 꿈을 키워왔을 세작 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심으로 생각을 적신다. 뜨거운 물에 떨구는 찻잎이 호수의 연꽃처럼 푸르게 두 팔을 벌린다. 조회시간 조무래기들의 손들처럼, 운동회 때 보여준 아이들의 어깨걸이처럼 찻잔 속에서 아름다운 잉태가 보인다.
그런 사이에 차 향기가 창 밖으로 흘러간다. 어쩜 저 향기는 자신이 살아온 어느 비탈진 산 어귀 차밭의 땅뙈기를 향하는 수구초심 같은 기표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허공에 포물선을 그으며 나부껴 가는 모습이 세상의 여백이 무엇이며, 여백처럼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푸른 허공이 세세한 나뭇가지의 존재를 알려주는 여백이었듯이, 사각의 창틀은 그 향기의 여백이 되어 주고 있다.
액자사진처럼 창틀에 흩어지는 저 향기의 그림자. 그 향기는 이내 봄비에 축축하게 적셔든다. 그들의 아름다운 만남이 창틀에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세상에 태어나 불혹을 지나는 상념의 굴렁쇠를 굴리며 저 창틀에 유년의 기억과 그리움, 그리고 자연의 소생하는 모든 생명의 살붙이들이 향기롭게 태엽에 감긴다. 언젠가는 다시 이 순간도 또 다른 봄비를 만나 추억의 필름을 되돌려 줄 것이다. 유난히 향기로운 꽃 그림자가 맑고 밝은 빗방울 안에서 흔들거리는 그런 봄날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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