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차도노을(사진=섬문화연구소)
섬사람들의 애환・삶이 어려있는 곳, ‘맹골죽도’
진도군 조도면 바다에는 178개 섬들이 새떼처럼 출렁인다. 이 중 맹골도는 맹골군도를 이루고 있는 가장 큰 섬이고 북쪽에 죽도가 있다.
진도에서 남서쪽으로 53㎞ 떨어진 맹골도 섬 면적은 1.73㎢, 해안선 길이는 5㎞이다. 맹골도는 맨 처음 ‘매음골도’라고 부르다가 뾰족한 바위가 많아 ‘골(骨)’자를 써서 맹골도로 불렀다.
맹골도 최고점은 132m이고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이뤄져 있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해식애가 발달했다. 자연경관이 빼어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섬에는 곰솔,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가 자생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주로 멸치, 붕장어, 도미, 우럭 등을 잡고 자연산 미역을 채취한다.
맹골도에 딸린 죽도는 섬 면적이 0.28㎢, 최고점이 77m이다. 대섬이라고도 부른다. 하조도에서 남서쪽으로 16km 해상에 위치한다. 진도 팽목항에서 하조도 가는 여객선을 탄 후 하조도에서 섬사랑2호로 갈아탄다. 섬사랑2호는 낙도보조 항로를 오가는 철부선이다. 하조도에서 출항하여 죽도까지는 1시간 40분이 걸린다.
외딴 섬 죽도는 대나무가 많아서 그리 부른다. 맹골도에 호랑이가 살아 옆 섬으로 오기 때문에 대나무를 심어 죽창을 박아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진도 조도군도 해양사 혹은 어업사는 맹골도, 죽도, 곽도 등 맹골3도에 모두 압축돼있을 정도로 이곳 섬사람들 애환과 역사는 남해안 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죽도 서쪽은 넓은 만(灣)을 이루고 동쪽 해안선은 비교적 완만하다. 섬 남쪽 끝에 있는 산을 최고점으로 북부 구릉과 남부 구릉 사이의 안부에 약간의 평지와 마을이 있다.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00년경으로 최형배 씨가 처음 들어와서다. 1400년에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고 전하는데 현재 주민들은 임진왜란 후 입도한 사람의 후손으로 전한다. 해남 윤씨 ‘고문서집성’ 자료에는 1760년대 해남 윤씨들이 이 섬을 소유했던 으로 기록됐다. 현재는 포구를 중심으로 35여명이 주민이 살고 있다.
죽도는 서해와 남해 물결이 만나면서 쏟아내는 격랑의 바다이다. 섬사람들은 이 난바다에서 생존을 위해 파도와 싸우며 자연산 해초와 물고기 잡는 기술을 익혔고 미역, 톳, 돌김, 청각은 주요 소득원이다.
최근 맹골도 자연산 미역은 20장 한뭇(한 속)에 6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알아주는 특산품이다. 서북쪽 죽도의 재넘취 근처는 낚시 포인트고, 조도 쪽으로 30분 정도 가면 사방팔방으로 병풍처럼 기암괴석으로 펼쳐지는 병풍도가 있다. 그 섬 아래가 제주 추자도다. 그리고 조도면 대명사로 통하는 관매도가 보인다. 관매도는 자연산 돌미역, 멸치, 꽃게, 우럭, 농어, 돔 등 자연산 활어가 특산품이다.
부산, 인천으로 향하는 1만 톤급 이상의 초대형 선박들은 거차군도와 맹골군도 사이의 맹골수도로 통항한다. 이 지역은 암초가 많아 ‘여밭’이라고 부른다. 목포항을 거쳐 동지나해, 흑산도, 가거도 해역으로 항행하는 선박들의 길목이다. 7월부터 12월까지 죽도 앞바다에서는 멸치 떼를 좇아온 어선들로 붐빈다. 해역은 멸치 떼로 하얗게 일렁인다. 어부들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배에서 바로 삶는다.
이래저래 등대 역할이 중요한 이곳에 죽도등대가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 126번지에 있는 등대는 국제항로에 중요하게 표시된 유서 깊은 등대다. 죽도등대는 1907년 12월에 조선 총독부 체신국 죽도등대로 최초 점등했다.
이후 1945년 미 군정청 운수부 해사국, 1955년 목포지방해무청, 1977년 목포지방해운항만청에 소속되었다. 1988년 목포지방해운항만청 항로표지관리소로 명칭이 변경됐고 1997년에 다시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죽도항로표지관리소로 변경된 후 2009년 무인등대가 되었다.
무인등대로 전환 후인 2013년 맹골죽도, 서거차리, 동거차리 1-2구 어촌계장들은 등대 무인화 후 여러 불편함을 호소하며 ‘맹골죽도 등대의 유인화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건의서’를 정부에 보내 등대 유인화를 촉구했다. 맹골도는 제주 추자도, 신안 가거도와 함께 감성돔 3대 포인트로 전국에서 낚시인들이 즐겨 찾는 섬이다. 죽도를 비롯한 인근 섬마을 사람들은 민박 운영 등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낚싯배와 어선들의 사고 위험 때마다 등대는 큰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리고 1년 후에 8㎞ 거리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등대에서 사고 지점까지 선외기 어선을 이용해 10분여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다. 죽도등대는 지리적으로 36.8㎞, 빛을 비추는 거리는 54.4㎞에 이를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보유한다. 등대원이 근무 중이었다면 빠른 구출이 가능했다. 유인등대 등대원은 365일 1시간 단위로 해상기온 등 바다상황 체크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 제일 먼저 달려간 사람들은 죽도, 동거차도, 서거차도, 맹골도 등 섬사람들이었다. 어민들은 30~40여 척의 어선을 동원해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는데 뛰어들었다.
죽도등대는 국제항로의 중요 표지관리소로 인정받을 정도로 그 역할이 중요하다. 죽도등대는 그런 역할로 말미암아 규모가 확대돼 무선전신과 방향탐지기 등도 설치했다. 태평양전쟁 때는 미군 B52폭격기 공격으로 시설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복구되어 회전식 등명기를 갖춘 광파표지, 에어사이렌 음파표지, 전파표지(RACON) 시설을 갖춘 등대이다.
백원형 콘크리트조로 등명기가까지 일직선 사다리가 설치돼 있고 외부에도 등롱에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등탑 높이는 8.5m, 평균해수면으로부터 등고가 85m에 이르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등탑은 작지만 다부진 축조기술로 단아한 이미지와 함께 전략적 요충지이자 사통팔달의 해상교통 거점인 곶에 자라잡고 서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에는 국립등대박물관에 소장된 죽도등대 무종(霧鐘, Fog bell)이 원래의 자리인 죽도등대로 되돌아왔다. 등대는 안개가 자욱할 때 불빛이 보이지 않은 탓에 종소리를 울려 선박들에게 항로 위치를 알리며 안전한 행해를 돕는다.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은 진도군 조도면 맹골죽도 주민들과 섬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맹골죽도등대의 무종을 다시 설치했다. 이 무종은 1950년대 높이 78㎝, 지름 38㎝로 63년 동안 선박한 안전한 길잡이 역할을 수행했다.
죽도등대에서 서면 서거차도가 풍경화처럼 다가선다. 상하죽도에 속한 섬이다. 경관이 일품인 인근 작은 섬들은 모두 해상국립공원이다. 무종이 등대의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등대의 역할과 등대와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해양문화 콘텐츠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죽도를 찾는 여행자들은 오늘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전망 포인트인 죽도등대에 서서, 가슴을 확 열어젖히리라. 그리고 툭 트인 섬을 바라보며 나를 치유하고 추억하는 멋진 섬 여행을 즐기리라. 문의: 조도면 거차출장소(061-540-6833)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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