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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16 나희덕, ‘빗방울, 빗방울’

섬과 문학기행/시가 있는 풍경

by 한방울 2018. 12. 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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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문에 흐르는 빗방울(사진=박상건)


버스가 달리 동안 경쾌하게 뛰어내리는 빗방울, 빗방울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빗물은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 나희덕, ‘빗방울, 빗방울전문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사진=박상건)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의 풍경이 시인의 눈에 걸리면서 아주 경쾌하고 철학적 풍경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창은 삶의 풍경이요 세계의 창이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어긋남, 무거움, 엎질러지는 세상, 그렇게 삶도 세상도 어우러지며 살아간다. 숲에 가면 사선으로 드러눕는 나무들이 서로의 목침이 되고 의지가 되듯이 우리네 삶도 반반의 기쁨과 술픔과 고뇌와 해탈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사선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동그랗게 보듬어 공존하는 창은 우리네 창이다. 때로는 무너지고 절망하는 비애가 아름답고 홀가분할 때가 있다. 그렇게 사선의 삶들은 수평을 이룬다. 모순인 듯 보이는 것들, 이를테면 바람과 빛과 가벼움, 망설임들도 결국 한 방울이 된다. 수평의 삶이다. 어둠은 번잡하고 사선의 길들을 삼킨다. 대조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아닌 새 길을 열어준다. 그렇게 언젠가는 바람 불고, 빛을 발하고 가벼워진다.

 

부서지고 뛰어내리는 것들이 더 이상 비애가 아닌 이유다. 그래서 절망은 새로운 희망으로 가는 길이다. 창에 흐른 동그란 빗방울의 풍경 속에서 맑고 아름다운 우리네 삶을 읽고 깨닫는다. 그렇게 지혜의 빗방울들이 뚝, 뚝 떨어지고 있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이 글은 <데일리스포츠한국> <리빙TV>에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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