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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바람이 되고, 잔돌이 되어 살아가는 장터 사람들

섬과 문학기행/시가 있는 풍경

by 한방울 2018. 11. 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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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신경림,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신경림, ‘목계장터중에서

 


1979년 시집 새재에 실린 이 시는 4음보 민요가락에 3음보 가락을 적절하게 배치한 민요풍의 걸작이다. ‘하고’, ‘하네’, ‘라네등 반복적 리듬은 시에 생동감을 더한다. 이런 리듬을 가진 시가 박목월 시인의 산이 날 에워싸고라는 시이다. “산이 날 에워싸고/씨나 뿌리며 살아야 한다/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흙집 안팎으로 호박을 심고/들찔레처럼 살아야 한다/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구름처럼 살아야 한다/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목계장터는 충북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남한강 나루터에 있었다. 대단히 번창했던 장터다. 하늘과 땅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네” “바람이 되라 하네동쪽 방위 기운을 상징하는 청룡과 흑룡은 흩어져 비 개인 나루에서,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 하네떠돌이, 방랑자의 삶이 운명이다.

 

다시, 산과 강은 들꽃이 되라 하고”, “잔돌이 되라 하네”. ‘들꽃잔돌은 나약한 민중을 의미하고 길 뜬 삶을 살다가 어느 길모퉁이, 어느 동네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이 풍진 삶을 어찌하랴. 삶의 푸념이요 하소연이다. 민중의 삶이란 늘 그런 것 아닌가. 그런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고, 세찬 물길에 돌처럼 견디면서 정착해야하고 목숨 부지하는 양면의 삶...

 

그래서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라고 한다. 어쨌든 처자식과 함께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현실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넘기며 살라는 것이다. 그렇게 떠남과 정착의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토속적 시어로 향토적 삶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박진감을 넘치는 4음보 리듬을 타고가다 보면 어느새 가슴 속에서 뜨거운 징소리가 울린다. 잠시, 그 울림 잦아들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슬퍼지고 아픔이 저려온다. 우리네 삶이란 그런 것이다.

 

,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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