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중생 삶 설법으로 되살리기
중생이 처한 현재 어려움을 먼저 살펴라
불교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 새로운 종교가 유입되고 다양해진 배경에 불교의 ‘열린 정신’이 기여한 바 크다. 부처님은 교리를 강요하지도, 상대의 주장을 배척하지도 않았다. 부처님의 설법은 세상 한 복판에서 제자든 재가신자든 겸허히 경청했고 옳은 것은 옳다고 인정하면서 경험과 지혜의 열린 설법을 했다.
하루 끼니 걱정하는 중생에게
검소하란 법문은 현실성 결여
법문 들으며 비전을 발견해야
청중은 만족·행복감 느낀다
지혜의 길은 중생과 더불어 한 시대의 동행이다. 중생들은 이 풍진 세상에 저마다 무거운 봇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들은 가정과 일터에서 고통과 슬픔의 번뇌로 파도치며 산다. 설법은 그 파도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주는 자비의 실천이다. 설법은 깨달음의 말씀을 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괴로움으로 가득한 중생의 마음에 귀 기울이면서 지혜의 쟁기질을 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 마음의 이랑을 읽어가며 중생과 교감하고 교통하는 과정이야말로 설법의 진정한 길이 아닐까.
얼마 전 방송을 통해 한 스님의 설법을 경청했다. 스님은 경전의 ‘탐욕’에 관한 문장을 인용하며 세존은 ‘이러셨다’, 어느 경전에서 탐욕은 ‘이래서 문제’라고 말씀하셨고, 어느 경전에서는 탐욕을 ‘이렇게 말씀하셨다’면서 경전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해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불의한 세습재벌과 투기자본세력 혹은 갑질 정치세력에 대한 질타도 아닌 바에야, 풍랑 속에서 오늘을 항해하는 중생들이 애써 한자 어휘를 해독하며 강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런 설법에서 얼마나 위안을 얻을까. 욕심꾸러기가 문제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민심을 이반해 시의성이 결여된 설법이나 지나친 윤리와 도덕적 언설은 되레 각진 삶의 언저리를 생채기낼 때가 많다. 지혜란 내 삶의 지평을 열어줄 때 진정으로 빛을 발한다. 첨단과학이 전하는 일기예보는 못 믿어도 할아버지가 하늘을 응시하고 고추 멍석을 걷으라면 식구들은 곧 비가 올 것을 예견하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체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믿는 탓이다.
설법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민초들에게 내 삶의 고민을 해갈하는 한 방울의 말씀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추상적 교리의 파편에 불과하다. 끼니 걱정하는 중생에게 탐욕과 검소를 강조한 일갈은 언어적 유희일 뿐이다. 대중의 삶과 동떨어진 스토리는 그만큼 서로에게 배타적 거리만 넓힌다. 신뢰는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중생들 삶의 밑바닥에서 캐낸 철학적 지성으로 말미암은 지혜와 삶의 의지를 열망하고 동행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설법은 속빈강정이다. 실천적 지혜로 말미암은 길라잡이라야 한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친구가 필요하고, 힘든 자에게는 긍정과 희망의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래서 청중 맞춤형 설법은 중생들 삶에 밀착한 주제와 사례의 적합성과 적절성을 갖춰 새로운 길을 여는 모티브여야 한다. 그러니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메모하는 습관의 중요성은 몇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메모를 현장에 되살려 환경에 맞게 감성적 감각적 설법으로 활용할 때 그 정서적 충격으로 인한 감동은 청중들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여울질 것이다.
과유불급. 너무 많은 사례를 나열하면 설법의 품위와 주제의식이 떨어진다. 지나친 문어체로 경전을 많이 인용하면 스토리가 지루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주위를 산만하게 한다. 스토리는 기승전결로 구성하고 독창적 사례로 생생하게 버무릴 때 물 흐르듯 흘러간다. 그럴 때 스스로 자신감이 충만하고 청중의 공감 폭도 커진다. 이것이 커뮤니케이션 동일성과 일관성의 완성이다.
뉴스는 흐름이다. 언론이든 설법이든 대상은 대중이고 현재 우리네 삶 속의 관심사를 실타래로 풀어가야 한다. 대중의 현실에 접목한 지혜로운 말씀일 때 청중의 가슴에서 빛을 발한다. 그렇게 그 말씀 속에서 삶의 에너지와 비전으로 발견했을 때 마침내 청중은 만족과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은 그렇게 너와 내가 한 가슴으로 새로운 집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법보신문 2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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