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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법 4] 자연을 되실리는 메모기술

여행과 미디어/여행길 만난 인연

by 한방울 2016. 2. 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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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연을 설법으로 되살리는 메모기술

감동적인 스토리는 체험과 독서량에 비례

 

어느 이른 봄날, 산길을 걸어가는 스님. 왼편 계곡은 잔설에 잦아드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백설이 세상만사를 하얗게 털어주더니만 나뭇잎은 태어난 그 자리에 밑거름이 되어주고 새싹은 비로소 어깨, 쑥쑥 밀며 새 생명의 봄날을 꿈꾼다. 그렇게 봄날은 오는가. 오솔길 바람소리와 함께 절 마당에 당도한 스님이 바라보는 대웅전 목어는 자비로운 미소로 흔들린다. 고요가 넘치면 바람이 목어를 울리고, 울림의 파문이 허공에 넘치면 바람은 적멸처럼 목어를 잡아 댕긴다.

 

물이 흐르듯한 스토리 구성

문장기술 반복적 훈련 좌우

메모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설법 완성도·즐거움 커져

 

이 두 단락은 절로 가며 사색하는 스님의 여정을 묘사한 것이다. 스님은 얼마 후면 템플스테이 마지막 프로그램의 하나인 설법을 하게 된다.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오죽하면 설교학 대가인 유니온신대학 포스딕 교수는 설교원고 하나 작성하는데 16시간씩 투자했을까 싶다.

 

메모는 긴긴 시간, 생각의 샘물을 마시며 생명력 있는 문장으로 꿈틀대며 성장한다. 메모는 비비꼬며 익어가고 우릴 대로 우리면서 새 문장으로 태어난다. 문장은 환경에 따라 흥미성과 시의성을 더해 스토리로 엮어진다. 문장은 정성을 쏟은 만큼 쉽고 실감난 스토리로 풀어진다.

 

설법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만약 주제를 여백으로 선택했다면, 스님은 산길을 거닐며 체험한 계곡을 연상할 것이다. 여백이 있어 물소리 새소리의 울림이 있고, 물은 차오르면 아래로 흘러가 메마른 평야를 적시는 젖줄이 되고 그 강물이 마침내 바다에 이르노니 이를 도()라 불렀다는 노자철학과 경전의 의미를 되살려 삶의 길을 일러줄 것이다.

 

그렇게 책장마다 줄 그어둔 문장을 곶감 빼듯 골라 초벌구이 원고를 기술할 것이다. 산길의 자연현상과 깨달음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려 민초들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할 것이다. 산길에서 대웅전까지 오면서 느낀 자연의 조화로움을 들려주며 자연은 보이지 않은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그래서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이라고 일러 줄 것이다. 난해한 경전은 녹여서 다른 철학적 의미와 버무렸기에 청중은 이해가 빠르고 흥미를 더한다.

 

만약 주제를 로 삼았다면 법구경명상에서 지혜가 생긴다. 생과 사의 두 길을 알고 지혜가 늘도록 자기 자신을 일깨우라라든가, 부처님이 깨달음을 경험한 순간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길이라고 말씀하신 내용, 초기불전 우다나잘못은 길을 찾지 않는 이에게 있다라는 문장을 인용해 명상과 신념의 중요성, 곡선의 미학을 보여준 오솔길의 스토리를 들려주며 각진 세상을 유연하게 살라 일러줄 것이다. 산길은 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겸허히 내려가는 순리의 삶이니 사람들은 정상을 향한 탐욕과 집착을 버릴 때 경쟁과 좌절, 가파른 세상살이로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 주기도 한다.

 

청중의 수준은 날로 높아간다. 그러면서 산사의 정갈함과 어느 정도 신비로운 스님의 말씀 속에서 해맑은 지혜와 따스한 자비까지 한아름 안고 싶어 한다. 뜬금없이 시사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상황을 감안해 다양한 사례를 발굴한 메모습관이 필요하다. 혹여 청중 가운데 젊은이들이 있다면 법구경비록 적게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라든가, 독일 시인 카롯사의 영혼이 깃든 청춘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라든가,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청년은 미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라는 메모를 메시지로 되살려 전한다면 설법의 진정성과 주목도,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고 깨닫는 추억의 날로 오래 기억할 것이다.

 

이렇듯 스토리의 성공과 감동은 다양한 체험과 독서량에 비례한다. 스토리가 물 흐르듯 흘러가는 데는 순전히 메모습관과 문장기술의 반복적 훈련정도에 달렸다. 스토리는 명료하고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소재를 많이 나열하면 주제가 흩어지고 주제 일관성이 떨어지면 청중의 집중도와 감동이 떨어진다. 메모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표현할 수 있을 때 설법의 완성도와 즐거움도 그만큼 커진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법보신문 2001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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