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를 좀먹는 스포츠연예기사
박상건(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요즘 스포츠연예기사를 보면 기획사 콘텐츠홍보 대행을 자임하고 나섰다는 느낌이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신문기사인지 알 길이 없다. ‘황색저널리즘’에서 ‘회색저널리즘’으로 치닫는다.
최근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 상위랭크를 클릭해보았다. “너도나도 유니폼 플리즈…박지성 인기는 못말려” 기사는 바레인 선수가 박지성 유니폼을 챙겼고 대부분 선수들도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면서 이청용, 이영표, 차두리 등을 나열했다. 그런데 왜, 제목은 박지성인가.
“박지성이 이란을 싫어하는 이유” 기사도 연일 톱 랭킹이었다. 박지성 선수가 “이란은 좋은 팀이다. 이란에는 축구를 잘 알고 있는 좋은 감독이 있다”고 말하자 기자는 이란 감독이 한국축구에 정통한 압신 고트비라면서 의미를 부여했고 편집기자는 ‘경계’라는 단어를 ‘싫어한 이유’로 둔갑시켰다.
“저 많은 북한응원단은 어디서 왔을까요?”기사는 팩트(fact)가 없다. 북한과 아랍에미리트 경기가 벌어지는 스포츠클럽스타디움 북한응원단은 “이겨라, 이겨라”, “힘내라, 힘내라” 등 초등학교 운동회에 수준이라고 힐난했다. 그런데 기사 어디에도 몇 명이라는 설명이 없다. 다만 사진에 나온 사람을 세어보니 1백명 정도. 4만명 규모 경기장에 응원단 1백명이 많다는 근거는 또 무엇인가?
연예기사는 더욱 가관이다. 2005년 5월 5일 “한가인과 결혼한 연정훈 ‘잠자리가 무서워’”라고 기사는 많은 사람의 웃음거리였다. 연정훈이 유치원시절 잠자리를 즐겨 잡았는데 풀어준 잠자리가 연정훈을 물고 도망갔고 ‘공포증’이 생겼다는 것. 잠자리에 공포증을 느끼면 참새 한 마리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 판. 기사 마지막 문장은 “새신랑 연정훈이 출연하는 ‘야심만만’은 오는 16일 밤 11시 방송된다”고 홍보 문장으로 끝맺는다.
12일 인터넷 이슈검색어 10위권에서 다음 날 급상승해 1위로 오른 검색어는 ‘정선희 감금’, ‘정선희 감금, 대체 뭔 일이래?’ 등이었다. 수 십 여건의 기사 내용인즉슨, KBS 2TV 한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정선희씨가 1997년 코 수술을 했는데 어머니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1박2일 외출을 금했다는 내용이다. 네티즌들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고 노골적인 낚시질 기사에 분노했다.
이처럼 스포츠연예기사의 선정적, 도발적, 눈속임 보도경쟁은 신문 신뢰도 추락속도와 비례한다. 홍보문구를 보도문장으로 위장해 신문지면을 제공한 행위는 전체 신문산업의 근간을 흔든다. 이는 정통저널리즘을 파는 ‘매춘행위’나 다름없다.
스포츠와 연예오락기능은 삶으로서 수렵활동이자 놀이로서 향유양식이다. 또한 가치창출을 위한 생산양식, 비즈니스적인 상품양식인 것이다.
최근 월드컵과 미디어, 대기업 스포츠마케팅과 팬덤 등 기업, 미디어, 스포츠는 황금의 삼각관계로 엮였다. 그만큼 다양한 시각과 이해가 공존함으로 저널리스트의 진정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산업혁명 이후 스포츠와 연예오락의 역할이 주목받았는데 이는 산업화의 폐해인 사치풍조와 청소년 풍기문란 문제 해소하기 차원이었다. 이런 역사성으로 볼 때 스포츠연예기사 한 줄이 얼마나 중요하고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난으로 가족이 흔들리고 공정사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슈퍼스타k, ‘아이유 신드롬’은 이런 사회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널리스트는 동시대 아픔을 치유하는 사명을 다하지 못할지언정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낚는 기사로 독자를 기만하고, 스스로 알아서 홍보성 기사를 쓰는 기자들! 자신이 없거든 펜을 내려놓아야 한다.
* 이 글은 <한국 기자협회보> '언론 다시보기'(2011.1.18) 칼럼으로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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