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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적 지식인과 실천적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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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방울 2010. 12. 1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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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인

 

 

박상건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한 해가 저문다. 이젠 버리고 비워낼 시간이다. 그 여백만큼 새해 새 꿈이 들어 찰 것이다. 언론은 해마다 10대뉴스를 선정하며 한 해를 갈무리한다. 이즈음 우리언론은 그 뉴스를 선정하면서 당시 사건사고에 대해 제 역할을 다했는지 반추해야 한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의 해. 1910년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고 집회금지와 원로대신을 연금했고 순종은 통치권을 빼앗기고 우리민족은 일제 식민통치 하에 들어갔다.

 

그런 100년이 되는 한 해는 시작도 끝도 온갖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며 대립과 갈등의 파도로 출렁였다. 세밑까지 서민들 가슴 조이고 도지면서 저물어 간다. 날치기로 307조원의 국가 새해 예산안이 30분 만에 통과됐다. 겨울방학은 다가오는데 결식아동 급식비 218억원이 삭감됐다. 2009년 542억원이 절반으로 삭감되는가 싶더니 아예 사라져버렸다. 영유아필수예방접종 340억원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 지역구 불꽃축제, 오페라축제 등 민원성 예산이 하나 둘 늘어나 1283억원이 늘어났다.

 

불과 3개월 전 한나라당은 서민대책특별위원회를 만들고 홍준표 정두언 최고위원, 안상수 대표까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예산을 깎아서라도 양육수당 확대방안을 관철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예산이 증발하는 사이에 언론은 구경꾼이었다. 예산국회 본질에는 침묵하고 피 터지고 깨지면서 돌격하는 여야를 싸잡아서 난장판 국회, 아수라장 국회, 패싸움 국회라고 양비론을 폈다. 국민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외양간 고치자면서 감시자 역할을 자처한다.

 

수능이 끝나자 신문들은 신문 활용법이 최고라면서 공부섹션 페이지를 기획해 신문 보도문장에 수능의 길이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면 보도문장을 보면 ‘피의 전쟁터’, ‘무법천지’, ‘한나라당 바리케이드’, ‘괴력의 사나이 김성회 의원’, ‘의장석 탈환작전’, ‘로텐더홀은 민주당의 점령지’ 등 거개 전투적 용어로 가득하다. 지붕이 둥근 원형건물 로텐더(Rotunda)홀을 행여 입시생들이 ‘민주당의 점령지’, ‘폭력의 원형’, ‘국회 혈투장’ 쯤으로 잘못 인식할까 걱정된다.

 

날치기 이틀 전 당대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이 타계했다. 이에 선생이 몸담았던 조선은 애써 기사가치를 깎아내렸고, 중앙은 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듯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대부’라며 지식인에 무게를 뒀다. 동아는 좌파진영 대표 사상가라면서 이데올로기 비중에 방점을 찍었다.

 

12월 6일자 횡설수설에서 이정훈 논설위원은 “많은 대학생들에게 중국과 베트남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퍼뜨렸던 리영희”, “그는 ‘주사파’가 활개 칠 수 있는 공간을 더 넓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노선을 접지 않았다”, “그런 그가 타계하자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로 온 국민이 북한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에도 일부 세력은 그를 다시 치켜세우려고 한다. 종북(從北) 세력인 ‘리영희 키즈(kids)’는 도처에서 상황 반전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한 생애의 주검이 무덤에 묻히기도 전에 그 무엇이 그리 당당했기에 덕지덕지 인용문으로 대학생, 민주당, 천안함, 연평도, 종북세력으로 짜 맞추며 횡설수설했는지 알 수가 없다.

 

동아는 이에 앞서 5월 20일자 배인준칼럼에서도 리영희 선생이 중환자실에서 신음할 시기에 “왼쪽엔 ‘시대의 스승’이라는 견장을 달고, 오른쪽엔 ‘친북좌파의 대부’라는 완장을 찬 인물”이라면서 “이들은(친북좌파)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비호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이미 자유 과잉상태다.”라고 폄하, 평가절하, 힐난에 급급했다. 도대체 ‘자유 과잉’은 또 무엇인가. 비약에 중독된 글쓰기의 기표과잉이 아닌지.

 

미국 28대 대통령 윌슨은 국민이 정부를 돌보는 곳에만 자유가 존재한다고 했다. 선생은 최소한 국민이 억압받고 가치관과 이데올로기 혼돈시대에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진실은 진실이라고 말했다. 지금 보수신문들처럼 당대 자기모순을 감춘 채 종합편성채널 쟁취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그런 몰염치의 뒤안길은 아니었다. 과거 방송 연혁을 기획물을 자사 이기주의로 엮어 연일 지면을 사유화 하는 진도된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수신문들은 자신들의 과거사를 ‘방송보도의 표본’이라느니 ‘신군부정권의 언론통폐합 희생양’, ‘군부에 빼앗긴 방송 반드시 복원’을 주장하며 ‘종편 통해 방송 부활의 날 빨리 오길’바란다는 일부 전직 언론인과 언론학자 발언을 부각하면서 ‘명품 방송… 그 품격 그 역할 다시 보고 싶다’는 기획기사로 여론을 호도하며 언어도단을 일삼는다. 자신들의 과거사는 군사정권의 희생이고 방송은 강탈당했다면서 당대 민주언론 희생자에 대해서는 왜 그리고 무관심으로 일관한가.

 

1987년 7월 6일자 동아시론 ‘기회주의와 지식인’이라는 제목의 칼럼니스트는 리영희 선생이었다. 이 나라 지식인들은 오랜 잠에서 깨어난 민중을 무조건적 관용과 타협이라는 최면술로 잠재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그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언론기관과 언론인이라고 지적했다. 페어플레이는 페어플레이를 이해하는 상대에게 적용될 때 공정한 게임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23년 전 일갈은 지금도 그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셈이다.

 

개인이든 국가이든 진실과 평안으로 가는 길은 접힌 것들을 펴는 일이다. 왜곡과 곡필로 굴절된 길은 반드시 반듯하게 펴야만 한다. 경술국치 100년의 서러움을 훌쩍 뛰어넘기 위해서는 언론이 진정으로 백성의 속울음을 소리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들이 일어나 소리칠 것이다.

 

* 이 글은 한국기자협회보 2010. 12월 13일자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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