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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배,

여행과 미디어/지성인과 대화

by 한방울 2004. 2. 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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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참 지성을 찾아서 ①

영원한 논객 언론인 김중배(전 문화방송 사장.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대표)

"언론이든 시민단체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어야"

"나는 모든 것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民이야말로 모든 것을 거침없이 다 할 수 있는 民이 된다는 말을 잊지 못한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자유의 모태이다"

김중배 선생은 5공 시절 귀 죽어지내는 이 땅의 民을 대신해 권력을 향해 이런 독설을 내뱉곤 했다. "아무리 좋은 글이 아름답고 매끄러워도 소용없다. 해를 해라고 쓰고 달을 달이라고 써야만 명문이 된다. 해를 달이라고 쓰고 달을 해라고 쓴 글은 아무리 다듬어졌더라도 명문이 될 수 없다. 그것이 나의 문장론의 알파이며 오메가이다"

그의 글은 늘 그랬다. 짧고 명쾌하다. 답답한 民들은 그들의 답답함을 그의 글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의 대표적 저서 가운데 하나인 <民은 卒인가>라는 사회평론집 책머리에서 거듭 이렇게 강조했다.
"나라와 누리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를 새삼 묻게 된다. 나라와 권력은 民을 위해서 있다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나라와 권력 그 자체가 民의 것이라야 한다. 나는 그것을 나라와 권력의 民有化라고 일컬어 온다"

줄기찬 권력의 民有化 주장

진정 행동하는 지식인 김중배. 정해진 좁은 지면에서 찍어내는 그의 한 획 한 획에는 늘 民의 외침이 혈관처럼 흐르고 있다. 천지간의 통곡 혹은 함성소리가 뒤섞인 채 뜨거운 울림이 있다. 그는 그런 民의 세상을 위해 언로는 뚫어야 한다고 외친다. "막으면 딴 길을 뚫고, 닫으면 딴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온 몸으로 뿜어내는 그의 언어들은 탁류에서 더욱 빛발치는 은빛 강줄기로 다가선다. 無聲의 民들에게 大聲으로 다가선다. 이내 민족의 함성으로 메아리쳤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다.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라는 표현은 그의 노래의 基調이며 가락이다. 끊임없이 民의 가락을 울어제끼는 그의 대표적인 글 중의 하나가 82년 5월 장영자 이철희 어음부도 사기사건 때 서울은 몇 시인가라는 칼럼이 아닌가 싶다. 정권의 부패상을 들춰내어 "정직하게 답하라"라고 촉구했던. 그러나 얼마 후 남산지하실로 끌려가 온갖 고문으로써 정권의 해답을 대신 들어야 했던 그였다.

"풀려서 돌아온 나는 한때, 이런 나라, 이런 땅에서 글을 써야 하는가를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몇십 년 또는 몇백 년 뒤의 독자까지를 헤아리는 예술작품도 아닌, 하루살이와도 같은 언론의 글쓰기가 이렇듯 적반하장으로 메아리친다면 공허하고 또한 공허하다는 생각만 들었지요."

언론은 제약의 무덤에서 헤쳐 나와야

그리고 5년 후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물 고문으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또 한번 분개했다.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때 그는 그 유명한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라는 칼럼을 썼다.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저 죽음을 응시해 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끝내 지켜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다시 죽이지 말아주기 바란다. 정의를 가지지 못하는 하늘은 제 하늘이 아니다. 평화를 심지 못하는 땅은 제 땅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이제 나라의 일이다. 겨레의 일이다. 한 젊음의 삶은 지구보다도 무겁다. 죽음의 무게도 그보다 가벼울
수는 없다. 국회도 불을 밝혀야 하고 종교와 법률전문직 단체도 연대해 전열에 나서야 한다. 언론도 제약의 무덤 속에서 헤쳐 나와야 한다. 이제 거짓의 하늘은 사라져야 한다. 거짓의 땅도 파헤쳐져야 한다. 거짓의 사람들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

결국 박종철 사건은 6월항쟁의 불길을 당겼고 그는 6월민주항쟁 10주년 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 공동대표를 맡기에 이르렀다. 그 후 참여연대 공동대표, 그리고 범 시민단체를 아우른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대표를 맡아 침묵의 언론, 선출되지 않는 언론권력의 폐해에 대해 부단히 고민하고 고발하고 전복하면서 그리고 때로 수술을 가하면서 나이 칠순을 앞둔 지금도 치열한 시민운동가로서, 언론운동가로서, 영원한 논객으로서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6월은 우리더러 늘 깨어 있으라 한다

이제 또 6월이 왔다. 그는 6월이 오면 늘 남다른 감회에 접어들곤 한다. 그는 6월항쟁 정신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민주화와 개혁의 원동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30년 이상 신문사에 몸담고 있었음으로 저는 4·19, 부마항쟁, 80년 서울의 봄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대목을 현장에서 모두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6월항쟁 만큼 지역과 계층을 초월해 광범위하게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일찍이 본 일이 없습니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연인원 5백만명이 참가했으니까요. 6월항쟁은 광범위한 스펙트럼 위에서 민주사회로 출발하는 시발점이었다고 봅니다. 지금 6월항쟁 정신은 우리에
게 잠들지 말고 늘 깨어 있으라고, 역사발전을 촉구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지난 5·18 20주기 때처럼 형식과 선정적 보도로 호들갑을 떨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6·10항쟁의 주역이었던 386 새내기 정치인들의 광주술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게 그렇긴 하지만(그들의 행동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보도대로 광주시민들이 그들을 그렇게 몰염치하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다는 거이지요. 특히 5·18단체들도 그렇다면 너희 언론들은 당시 광주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반문하면서 무조건 그들을 매도하지 말라, 오히려 언론에 자제를 하라고 촉구했지 않아요?"

5·18때 언론은 뭐 했길래 386 술판 운운하나

그럼 언론이 한 시민운동가의 성희롱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한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언론이든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이든 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군중의 정서를 소용돌이에 비유했다. 너무 쉽게 휩쓸린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리고 "요즈음 나는 다시 언론사를 보도기관이라고 부르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기관은 권력기관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미 언론은 다시 과거 관행으로 되돌아갔다는 의미일터. 국민적 지지를 받던 낙선·낙천운동를 마지못해 보도했던 언론의 그 본색이란 게 차제에 시민단체의 부도덕성을 집중부각하고 아예 짓이겨버리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었을 터. 그래서 그는 더욱 더 과거 자신과 동료들을 짓밟던 권력기관을 연상했을 터. 한편으로는 정의와 민
주를 외쳐대다가 어느 날에는 좌경용공분자나 폭도로 매도하는 그런 언론의 행태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언론정보학 교과서와 우리 언론의 차이

"언론정보학의 교과서들은 의견은 자유이나 사실은 신성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이 땅의 거대 미디어들만을 준거로 삼는다면 의견은 자유롭지 못했으며 사실은 전혀 신성할 수 없었다. 우두머리의 한마디가 모든 의견이었으며 우두머리의 지시는 사실만이 어처구니없게도 신성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한 때는 그 언론기관 종사자였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참회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미 고백한 대로 나는 언론의 죄인이며 역사의 죄인입니다. 거의 40년 동안 쌓아온 죄책을 씻을 길이 없습니다. 그 기나긴 역사의 시간을 어떻게 되돌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 회한으로 말미암아 불면의 밤은 이어집니다. 뻔뻔스러우나마 남겨진 일이란 치열한 참회와 속죄뿐입니다" 그의 고백이 많은 후배 기자와 현직 언론인들의 참회를 대신한 것
은 아닐런지...아무튼 그는 그의 업보라고 생각하는 언론운동을 위해 老兵 장수로서 언론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고 시민들과 함께 진정한 民과 참 언론 세상을 향해 부단히 뛰고 있다.

그는 후배들이 언론개혁시민연대를 만들기로 하고 앞에서 적극 이끌어 줄 것을 부탁하자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이 단체의 기금 마련을 위해 그 동안 써 온 글들을 부랴부랴 모아 <미디어와 권력>이란 제목의 책을 엮어내기도 했던 열정과 헌신의 모습을 다했다.

사주가 칼럼 필자 정하고 사설까지 개입하는 세상

그런 그가 바라보는 오늘의 언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신문 발행인의 자유가 끝없이 확대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본 일반을 대변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권력의 언론 통제보다 더 강한 언론사주의 통제력이 발휘되고 있지요. 실제 신문 발행인이 칼럼 필자를 지정하고 사설에 개입까지 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풍속이 지금 일상화되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당연히 언론 종사자들은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다가 패권주의와 자사 이
기주의에 매몰될 경우 집단이익이 된다면 자기의견과 안 맞아도 수용하겠다는 의식이 팽배해지는 것이지요"

거대 신문사들의 패권주의적 발상, 자신들이 얼마든지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위선과 오만 그리고 부화뇌동하는 종사자들을 향한 따끔한 충고와 질타를 아닐 수 없다. 그는 91년 12월 한국기자협회가 전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투표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었다. 그는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오늘의 기자들을 기생하는, 기어다닌다는 뜻의 기자라고 부르겠다고 일성을 터뜨렸다. 많은 후배 기자들이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어쩌면 그는 선천적으로 영원한 언론운동가로 태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권력과의 싸움에서 자본과의 싸움으로

그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데에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박차고 나오는 배경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91년 9월 6일 그는 편집국장으로서 지면쇄신을 위해 <동아일보>에 소설가 윤정모, 역사학자 안병무, 국회의원 제정구 등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비중있게 소개했다. 그러자 사주는 체제 부정, 국민의 위화감 조성 등 당시 80년대 군사정권에서나
듣던 용어를 담은 소위 사내 보도지침을 돌렸고 이에 대해 그는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 보다 원천적인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김중배만이 할 수 있는 김중배 선언이었다.

돌이켜 볼 때 어쩌면 그 때 깨어있는 기자들의 실천적 언론운동이 담보됐더라면 지금의 언론개혁운동을 더욱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가속력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는 언론계 내부 자기반성은 큰 설득력을 얻는다.

北의 세습이나 南의 언론세습이나 같은 것

이런 언론의 현주소가 방치되고 조장되고 파생되는 데에는 당연히 우리 언론의 상습적인 문제인 족벌언론, 세습언론 문제로 귀결된다.
"일본에 가서 북한의 세습정치를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일본사람들이 오히려 저에게 반문해와 무척 당황했습니다. 너희들은 신문사가 몇 대가 지나도록 그 집안에서 주인이 나오고있지 않느냐? 계속해서 세습되는 것이 한국언론의 소유구조인데 그 나라라고 세습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직설적인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담해져버린 이 땅의 언론을 건지는 길은 실천과 행동의 전
략뿐입니다"

그는 이러한 소유 집중과 세습을 뜯어고치기 위한 법제화 운동도 언론개혁 차원에서 병행해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이 주인인 국민주방송 설립을 위해서도 남다른 열정을 다하고 있다. 그런 연장선상에 서 어느새 분열과 정체의 한국언론 시장을 향한 언론재벌 머독의 실상을 우려하고 있다. 국내 언론시장 진입을 위한 무서운 돌진 태세를 무척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머독의 위성진출 문제는 국내 채널정책이 결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와 시민의 목소리보다 시장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문개혁 운동과 함께 우리방송문화 지키기 운동에도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시민운동 차원으로 확산되지 못한 것이 언론운동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신호등, 오작동시 피해자는 일반시민

"나는 언론을 신호등에 비유합니다. 신호등이 오작동 됐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반시민이 봅니다. 그렇다면 그 신호등을 누가 바로 잡아야 하는가. 신호등 업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오작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또 다른 시민이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신호등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언론운동은 이제 언론인만의 운동이 아닙니다. 언론은 반드시 시민의 힘으로 바꿔야 합니다. 권력의 힘을 빌어서는 안됩니다. 권력의 힘을 빌어 개혁하려다가 실패한 사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앞으로 학생과 여러 시민들이 언론운동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언론개혁은 당연하고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言改聯이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전국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전 국민의 62.6%가 언론개혁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신문개혁 방안에 대해서, "방송개혁관련 논의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만큼 정간법 개정문제 등을 서두르겠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국회 입법 과정을 통해 풀어야 하는 만큼 우리 주장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도 없고 해서 나름대로 국회 문광위원들과 함께 의견교환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람직하기로는 국회가 공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기관인 만큼 신문개혁을 포함한 제반 언론개혁 문제를 풀어나갈 공공적 성격의 위원회를 만드는 데 공적 근거를 마련해 이해 당사자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결론을 국회가 받아들여 마
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목을 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시민운동의 새 패러다임을 마련한 김중배

그가 言改聯을 이끌면서 시민운동의 페러다임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많다. 유력 일간지의 막강 편집국장이 스스로 언론권력을 버리고 약자의 편에 서서 民의 운동을 펼치면서 시민운동에 대한 신뢰 구축 및 정제된 철학과 이론연구를 병행하는 커류큘럼의 변화, 그리고 실천을 촉진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일보>·<동아일보> 사회부기자, 사회부장, 논설위원, 이사 출판국장, 이사 편집국장, <한겨레신문> 편집위원
장·사장을 거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상임공동대표 그리고 민주언론상 등 언론관련 수상경력 3회, <민초여 새벽이 열린다>에서 <미디어와 권력>에 이르는 다수의 저서를 갖고 있다. 그런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인정하는 쟁쟁한 경력의 소유자이면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넓은 가슴을 가지고 있다. 늘 아래로 흐르는 그의 마음 씀씀이와 정서가 변치 않았기에 더욱 아름답고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닐런지.

지식인이란 이 세상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

"후배 언론인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의 첫 시리즈로는 내보내지 말아줘요"라는 대목에서 다시 한번 그의 겸허함을 엿보게 했다. 그는 새파랗게 젊은 후배들에게도 존대말 쓰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무교동 어느 술집에서 오늘도 후배들에게 한 잔씩을 돌리고 있을 그. 취하면 취하는 대로 어깨에 어깨를 걸고 "새 날이 올 때까지/ 우리 흔들리지 말자"는 오월, 그날
이 다시 오면이라는 노래를 목청껏 불러보고... 그는 변함없이 이 노래를 그의 18곡으로 열창할 것이다. 그런 영원한 청년 김중배이기에 깨어있는 젊은 기자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자신들이 가야할 길을 앞서가고 있는 김중배 선생을 찾아 무교동 그 술집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 고은이 이렇게 노래한 우리시대 참 지성 그 김중배를 찾아서 말이다.

동아일보 시사평설은
밤이 깊어지면서
더욱 빛나는 별빛이 되었다

私로서 公을 꿈꾸고
그 공이 행여 사를 부정하지 않도록
그의 글들은
공과 사를 다 살려내는 제2악장이었다

그 젊은 눈 크게 떠
그 큰 웃음소리
모든 것을 다 보아서 걸러내는
그의 입이야말로 그의 붓과 함께 강하다

지식인이란 이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김중배는
늘 내일을 기다린다
(만인보-김중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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