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최도선 시인이 최근 시집 ‘물까치 둥지’를 현대시학에서 출간했다. 이번 시집 제목처럼 최도선 시인의 작품은 친자연주의적 서정풍에 인간의 원초적 정서에 충실한 휴머니즘을 잘 버무린 풍경이 압권이다. 시인의 시어는 아주 간략하고 함축적이다. 특히, 이번 시집은 시인의 지난한 연륜을 반영하듯 아주 깊은 의미와 색을 지닌 청자빛과 인간 삶의 표상인 뻘의 정신을 시어를 길어 읊조린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천적을 피해 높은 곳에/물까치 둥지를 튼다//어디서 물어 왔을까? 잎 마른 가지들을//한 줌의 자그마한 집/헐겁지 않다 환하다//육 남매 양말 깁던/굳은살 손끝으로//세월을 호며 감치다 세월 등진 어머니//폭설을 견디는 새를 봐라/하늘 품는 새를” -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전문)
까치둥지를 본 적이 있거나, 나뭇가지나 전깃줄에 앉은 어미 까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은 ‘천적을 피해 높은 곳에’서 새끼들을 보호하는 까치의 모성애를 떠올리며 이 시를 쉽게 음미할 수 있다.
그런 까치가 “육 남매 양말 깁던/굳은살 손끝으로//세월을 호며 감치다 세월 등진 어머니”와 오보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기에 폭설을 뚫고 사는 신산한 삶을 연상케 하는 “폭설을 견디는 새”, “하늘 품는 새”로의 귀결은 한 편의 파노라마 풍경을 보는 듯한 하다.
“지극한 그리움이 배어 나온 비색일까/보고 또 보아도, 그대 품 닮지 않아/오늘도 내리쳐 깨뜨리며 저 먹빛에 젖는다//천상을 날던 학이 끔결같이 다가와/구름도 드나들던 이승의 빈 하늘에/푸르고 단단한 눈물 떨궈놓고 날아간다” - ‘보일 듯 보이지 않게 1-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전문
“베적삼 뒤로 넘기며/물레로 빚어 한 가마를” 굽는 모습이나 잘 빚은 청자를 감상한 적이 있는 사람은 청자빛이 어떤 것인지? 어떤 상상력을 잉태하게 하는지를 잘 안다. 최도선 시인은 그런 청자를 “지극한 그리움이 배어 나온 비색”으로 보았다. 그런 비색임에도 내리치고 부서뜨린 후 화룡점정이 “먹빛에 젖”고 “천상을 날던 학이 끔결같이 다가”오고 “구름도 드나들던 하늘”이 그려지고 더 어쩔 수 없이 시인의 눈가에 “푸르고 단단한 눈물 떨궈놓고 날아간다”.
아주 간결한 시적 묘사로 시인의 깊고 푸른 감성이 읽는 이의 가슴에 오래도록 잔잔한 파문을 일게 한다. 말장난 짓이 도드라진 최근 스토리텔링 시쓰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인은 함축된 시어로 가장 넓고 푸른 하늘 공간에 바다의 깊이와 출렁이는 파도소리까지 담아냈다.
“조석 간 드러내는 저것 봐,/저것 좀 봐!/훌러덩 벗어 던지고 속살 보란 듯이 퍼지른/함부로 말하지 마라/삶의 터다, 바닥이” -‘뻘’ 전문
바다는 하루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을 통해 비우고 그만큼 채우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바다는 수평을 이룬다. 오직 정상을 향해, 양육강식과 적자생존 처세술에 따라 수직적 삶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연말연시 일출과 일몰 앞에서 경건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생의 대단원은 가장 낮은 곳에서 끝난다. 바다의 저 밑바닥 인생의 먹이사슬이 바다의 생태계를 이룬다. 시인은 그 삶의 밑바닥의 의미를 화두로 던졌다.
나는 섬문화연구소가 매년 개최하는 섬사랑시인학교 캠프 때 최도선 시인이 섬에서 아이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는 모습을 자주 뵀다. 최 시인은 아이들 눈높이에서 갯마을 아이들 특징과 현장 분위기를 되살려 캠프를 운영하는 교육자로서의 마음 씀씀이, 어머니로서의 지극정성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번 시집 발문을 쓴 황치복 문학평론가 역시 “최도선 시인은 소박하고 순결한 삶의 모습을 절제와 응축의 시조 미학으로 구현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간결함과 원시적 삶의 모습에서 참다운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도선 시인은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고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내다가 은퇴 후 지금은 시냇물 소리 그윽한 시외 자연으로 돌아가 집필 활동 중이다. 1993년 <현대시학>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에도 열정적인 시인의 주요 시집으로는 ‘겨울기억’, ‘서른아홉 나연 씨’, ‘서른아홉 나연 씨’, ‘그 남자의 손’, 비평집 ‘숨김과 관능의 미학’ 등이 있다.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이 글은 섬투데이(www.sumtoday.co.kr), 데일리스포츠한국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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