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도의 아침바다(사진=박상건)
[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16 삽시도
훌쩍, 겨울바다로 떠나 홀로 조용히 지내고 싶다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해양 국가이자 반도 국가이다. 이 섬들에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과 어부들의 안전을 위해 유인등대 38개 등 5,289개 등대가 있다.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섬과 사람을 이어주는 등대 불빛. 그 소통의 미학을 찾아 우리나라 해양 공간 곳곳을 30년 동안 답사한 섬 전문가 ‘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을 독점 연재한다. 그가 직접 취재하고 촬영한 생생한 섬과 바다 그리고 등대이야기가 매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섬에서 태어나 30년을 섬으로 떠돌았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왜 섬에 가느냐? 겨울에도 섬에 갈 수 있느냐? 어떤 섬이 제일 좋으냐는 것이다.
왜 섬에 가느냐는 물음은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섬은 더 이상 유토피아 대상이 아니다. 잠시 잊고 산 인간의 원초적인 고향인 자연과 소통하는 것이다. 섬으로 가는 길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동행이고 나를 반추하는 여정이다.
섬은 인간의 희노애락을 재현한다. 사계절 풍경은 기쁨과 슬픔, 고단함과 희망의 메시지로 나부끼고 출렁인다. 그 섬에 가면 생각이 역동적이고 섬의 문화와 해양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승되는가를 실감한다. 겨울바다에서 언 손 부비며 김을 뜯고 눈 뜨기도 어려울 정도의 갯바람이 뺨에 때려도 굴을 따고 그물을 끌어 올리는 사람들을 만나보라. 그런 강인한 섬사람들,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섬사람의 숨결을 만나는 순간, 우리네 가슴도 뜨겁게 타오른다.
삽시도는 안면도에서 남쪽으로 6km, 보령시에서는 서쪽으로 13.2㎞ 떨어져 있다. 보령시 오천면은 83개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삽시도는 원시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섬 모양이 화살이 꽂힌 활과 같다 해서 삽시도라 부른다. 섬 서쪽을 제외하면 대부분 낮은 구릉지로 여느 어촌처럼 오솔길과 들길, 솔숲을 지나 툭 트인 바다로 열린다.
대천항을 출발한 철부선이 선착장에 도착하는 장면(사진=박상건)
서쪽 해안절벽에 파도와 바람이 쉴 새 없이 밀려와 부서지면서 토사가 남쪽 해안과 동쪽 해안으로 밀려와 퇴적되어 넓은 사빈과 농경지가 만들어졌다. 북서계절풍 영향으로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큰데 특히 겨울은 다른 섬보다 춥다. 겨울바다의 진면목을 체감할 수 있다.
삽시도의 432명의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고 멸치, 삼치, 새우, 게를 잡아 생계를 잇거나 김과 굴, 전복, 대합을 양식한다. 나는 바닷가에 위치한 민박집을 선택해 하룻밤을 보냈다. 작은 섬이지만 드라이브를 하며 돌아볼 수 있고 느릿느릿 걸으며 사색하기에 좋다. 삽시도는 지극히 자연적인 풍경 속에 나그네를 보듬어 평안하게 해준다.
삽시도는 크게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웃말은 섬 북쪽 마을로 25가구가 산다. 50년 전 방파제를 쌓기 전에 이 마을까지 큰 배들이 들어왔다. 아랫말은 남쪽 마을로 10가구가 산다. 당제를 지낼 때 임산부들의 임시 거처인 해막터가 있던 마을이다.
술뚱은 삽시도 선착장 마을이다. 서해안 모래가 솟아오른 풀등처럼 모래와 자갈 등이 밀려와 육지가 됐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 이 마을에는 30가구가 살고 파출소, 보건지소, 발전소 등이 위치한 삽시도 중심이다. 선착장에 낚시꾼들이 갯바람을 맞으며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물고기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려는 겨울 섬 여행 마니아들이다.
남쪽마을 밤섬은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졌다. 밤을 닮아서 붙여진 섬 이름. 장골이라는 마을은 북쪽 낡은 당산과 남쪽 차돌백이 파수막산 사이 골짜기에 길게 늘어진 마을로 너른 뜰 같은 공간이다. 이밖에도 장골 동쪽에 전마을뚱, 아랫말 동쪽의 뚝말, 파수막산 남쪽 평지의 밤섬구 마을 등 이름도 신기한 동네들이다. 서쪽 물망터는 밀물 때는 잠기고 썰물 때는 맛 좋은 식수가 나온다. 칠월칠석날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욕하면 병이 없어진다는 신비의 샘으로 나이 지긋한 분들이 자주 찾는다.
서해안 섬 여행의 제 맛은 갯벌체험인데 삽시도는 풍성한 해산물 채취할 수 있다. 일단 거의 모든 해변에서 조개를 잡을 수 있다. 밀물 때 맑디맑은 물빛 아래 해저의 조개를 볼 수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즐기면서도 조개를 잡을 수 있다. 물론 겨울에도 밀물과 썰물이 두 번씩 반복함으로 조개잡고 굴도 딸 수 있다. 썰물 때는 백사장에서 발로 툭툭 모래를 치거나 두 손으로 모래를 쭉 긁으면 조개들이 쉽게 드러난다. 모래 위의 작은 구멍을 파면 확률이 높다. 소라와 홍합도 잡을 수 있다.
갯벌체험을 하려면 민박집에 부탁해 조개잡이 삽이나 호미를 준비하는 게 좋다. 바다에 나가 조개를 잡지 않더라도 주민들은 해산물을 냉동보관함으로 사계절 반찬과 국거리로 주문해 맛 볼 수 있다. 나는 마음씨 좋은 민박집 주인 탓에 굴과 조개를 몇 바가지 얻어 구이와 생굴로 술 안주거리로 즐겼다. 바닷가 민박집에 들려오는 파도소리, 혼술의 매력과 함께 그렇게 첫날밤은 깊어갔다.
다음날 삽시도 어촌계 사무실 앞 술뚱 선착장으로 나갔다. 밀물 때 게가 선창가로 기어 올라와 여행자들은 면장갑을 끼고 게 잡기를 하고 있었다. 물이 빠지면 낚시꾼들이 갯지렁이를 잡기 위해 모이는데 갯지렁이가 있는 곳은 게와 낙지가 많이 서식한다.
삽시도 백사장은 완만하다. 그래서 가족여행 장소로 좋다. 물이 맑아서 비염이나 피부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은 여름바다 야영지로 더없이 좋다. 물론 겨울바다에서 동그랗게 형성된 해안선을 따라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거닐어보는 그 맛이 일품이다. 여름에 좀 눈부시다 싶으면 해안 솔숲 아래서 쉰다. 겨울은 눈 쌓인 모습이 멋진 풍경화를 연출한다.
삽시도 거멀너머해변(사진=박상건)
이처럼 삽시도 경관은 해안선을 따라 볼거리 먹거리를 두루두루 갖췄다. 밤섬해수욕장은 삽시도에서 가장 긴 백사장인데 울창한 송림과 앞바다 불모도 풍경이 잘 어우러져 있다. 거멀너머해수욕장은 삽시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는데, 백사장이 1.5km에 펼쳐진다. 물이 매우 맑고 경사가 완만해 가족끼리 찾기에 좋은 곳이다.
진너머해수욕장은 마을 당산너머에 있는데 1km의 백사장이 펼쳐진다. 아주 아늑한 해변이다. 특히 백사장 양쪽 끝머리 갯바위는 낚시를 즐길 수 있고 백사장 뒤쪽 소나무 숲이 잘 단장돼 야영하기에 좋다.
해변에서 나와 섬 중간쯤 공재채취장 쪽으로 가면 차돌백이산, 파수막산, 낡은 당산 등의 이름을 가진 야트막한 산이 있다.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이고 홀로 산책하거나 삼림욕에 좋은 숲길이다. 숲을 걷다보면 어느새 파도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를 따라 가다보면 바다가 펼쳐진다. 길은 다시 숲으로, 포구로, 마을로 이어진다.
그렇게 삽시도는 홀로 사색하고 조용히 머물기 좋다. 한적하면서 친환경적인 섬이다. 적당한 가수 수와 여객선이 오고갈 수 있는 포구와 향토적 오솔길은 나를 치유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북적이지 않고 유흥가가 없으면서 머물기에 불편함 없을 정도의 가게와 민박시설을 갖춘 섬이다. 배편 및 자세한 문의: 신한해운(041-934-8772) 보령시청 관광과(041-930-3542)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 이 글은 <데일리스포츠한국> <리빙TV>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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