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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외로운 날 한 사나흘 조용히 머물다 오고픈 섬 고파도

섬과 등대여행/서해안

by 한방울 2018. 10. 2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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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파도 저녁바다(사진=섬문화연구소)


민박집 창밖의 고파도 풍경(사진=섬문화연구소)

[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고파도

그리움 고프거든, 한 편의 그림과 영화 같은 고파도로 떠나라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해양 국가이자 반도 국가이다. 이 섬들에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과 어부들의 안전을 위해 유인등대 35개를 비롯하여 5,289개 등대가 있다.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섬과 사람을 이어주는 등대 불빛. 그 소통의 미학을 찾아 우리나라 해양 공간 곳곳을 30년 동안 답사한 섬 전문가 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을 독점 연재한다. 그가 직접 취재하고 촬영한 생생한 섬과 바다 그리고 등대이야기가 매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한 사나흘 조용히 머물다 오고 싶은 섬.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시골스러운 민박집에서 머물 수 있는 곳, 그리고 싱싱한 먹거리가 있는 섬. 오고 가는 교통편이 불편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섬.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면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내기 좋은 섬. 그러면서 소소한 이야기가 출렁이는 섬. 이렇게 까탈스러운 여행자들도 보듬어 주는 섬. 집 떠나면 모든 게 불편한지 알면서도 기꺼이 고독을 찾아 즐기려는 길거리 철학자들까지 머물기에 제격인 섬이 고파도이다.

고파도는 태안반도와 마주보는 서산의 해협의 끝자락에 있는 섬이다. 배를 타고 그 해협을 거슬러 가야하는데 파도가 철썩철썩 뱃전을 때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계곡물처럼 급류로 변해 배를 흔들어 쌓는다.

 

서산시 팔봉에서 고파도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 바다가 가로림만이다. 가로림만의 길이는 25km, 너비 2~3km. 가로림만의 갯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보기 드물게 자연 상태가 보존된 곳이다. 그래서 해양수산부는 천혜의 갯벌을 보유한 이곳을 환경가치 1위의 바다로 평가했고 해양보호구역으로도 지정했다. 천연기념물 점박이물범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 가로림만에 숨어 있는 섬, 고파도는 전형적인 우리네 옛 어촌 풍경과 양식장으로 이뤄져 있다. 배편은 구도 선착장에서 이용하는데 하루 세 차례 운항한다. 나는 그날 배편을 놓쳐 소형어선 선외기를 타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정기여객선을 이용했다. 사선으로 15, 정기 여객선으로 45분 소요된다. 여행객들은 바다가 소용돌이치는 뱃길을 헤치면서 처음엔 다소 놀라지만 이내 섬 여행의 스릴과 해양 생태여행의 색다른 맛이 무엇인 실감하고 익숙해진다.

 

고파도는 가로림만에서 동그랗게 휘어져 들어온 곳에 위치해 호수처럼 잔잔하다. 60여명의 주민이 사는 고파도는 서산시 팔봉면 22개 마을 중 고파리에 해당하는 마을 단위 섬이다. 고려 때 고파도(古波島)’라고 불렀다. ‘고파도성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높을 고()’가 아닌 옛 고()’여서 섬 이미지 또한 더욱 고풍스럽다.

 

고파도와 처음 만나던 날, 바다는 온통 해무로 나그네를 맞았다. 승무를 추는 여인처럼, 학의 군무처럼 안개가 휘날리며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놓고 나그네 넋을 빼앗았다. 이따금 바람 따라 안개가 밀려간 그 빈자리에 푸른 섬 한 귀퉁이이가 보일 듯 말 듯 비밀커튼 여닫기를 반복했다. 자연이 연출하는 그 풍경 자체에 압도당했다. 크게 탄성을 내지를 뻔 했지만 그러기엔 섬마을이 너무 적막했다.

 

그렇게 바닷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민박집 이장 댁에 도착했다. 여장을 풀고 이장님 어머님께서 손수 삶아준 고동을 맛본 후 바다로 나갔다. 고파도는 해안선 길이가 4.5. 백사장 길이가 500여 미터에 불과하다. 작아서 더욱 아름다운 섬마을의 호젓한 오솔길을 걷다보면 어릴 적 고향 바닷가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 옥수수, 고추, 오이 등 반농반어촌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바다로 나가는 고파도 사람들(사진=섬문화연구소)


고파도 여객선(사진=섬문화연구소)


백사장으로 넘어가는 길에 산딸기, 삐비꽃, 해당화 군락지 등도 아련한 시골길 그대로였다. 꽃향기와 함께 시누대가 울타리로 삼고 있는 둑길을 넘어서자 툭 트인 바다가 열렸다. 몇몇 일행뿐인 적막한 바닷가, 저 푸른 파도 앞에서 무슨 체면치레가 필요하랴. 일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함성을 내지르며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타기를 했다. 고파도는 밀물 때는 모래해변에서 해수욕하기가 좋고 썰물 때는 지천으로 깔린 고동과 모시조개, 바지락을 잡을 수 있다. 앞 바다에서는 우럭, 놀래미, 농어,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

 

이윽고, 노을이 떨어졌다. 굴 양식장 바지랑대 위로 짙은 노을이 지는데 정말이지 한 편의 영화였다. 무심히 바로노라니 조등처럼 슬퍼지기까지 했다. 그런 허공으로 갈매기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구슬프게 울어댔다. 그렇게 태안반도 저 편에서 노을이 뚝, 떨어졌다. 물론, 지는 해는 다시 이 바다에 더욱 새롭게 떠오를 것이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떠나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고파도 바닷가에는 굴 껍데기로 가득했다. 고파도는 유명한 굴 생산지이다. 그 옛날에는 굴을 따서 목선을 타고 나가 다시 지게에 굴을 짊어지고 몇 개 산봉우리를 넘어 서산 오일장에서 돈을 샀었단다.

 

작은 여객선은 섬사람들과 오래도록 동고동락해왔는데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 탓에 물때에 따라 승선하는 사다리 각도와 높이가 달라진다. 객실에는 깨알만한 글씨로 운임표가 붙어 있었다. 시멘트 한 포대 200, 조개자루 한 포대 1000, 멸치 한 포대 500, 비료 1포대 500, 젓갈통 1000, 생선다라 1500, 20한 포대 500, 주민 1인당 2500. 운임이 참 싸다. 분명한 것은 지불하는 요금이 많을수록 섬사람도 선장님도 행복하다는 점이다.

 

그렇게 잔정이 곱게 출렁이는 섬, 고파도. 해무처럼 사람과 바다가 더불어 그윽하게 교통하는 섬이다. 지나간 시간들이 몹시 그립거든, 무작정 고파도로 떠나볼 일이다. 문득문득 내 핏줄의 고향, 고향사람들이 그립거든, 그 얼굴을 찾아 떠나듯 고파도로 길을 떠나라. 그렇게 휴머니즘이 사무치도록 고프거든 고파도로 떠나보라.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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