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앞 초원(사진=박상건)
마라도 분교(사진=박상건)
[박상건의 섬 이야기] ⑫ 마라도
동중국해와 제주바다를 지나는 마도로스의 희망봉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는 남제주군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30분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다. 푸른 물결을 퍼 올리며 달리는 배의 저편에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섬이 다가선다. 그 섬, 가파도는 네덜란드 선장 하멜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하멜은 제주 바다에서 많은 선원을 잃고 표류 중이었는데 제주목사 이원진이 병력을 인솔해 구제했다. 하멜은 “우리 많은 기독교도들이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이교도들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1653년 견문기 ‘한국유수기’를 통해 서양에 널리 알려졌다.
제주도 우스갯말로 “가파도(갚아도)좋고 마라도(말아도)좋다”라는 말이 있다. 가파도와 마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외로운 섬 생활을 서로 한 물결로 보듬어 가며 살아왔다.
가파도를 지나 마침내 마라도에 도착했다. 마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마을을 이루는 섬으로 원래 가파리에 속했으나 1981년 마라리로 분리되었다. 2000년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섬 모양은 길쭉한 고구마를 닮았다.
마라도 해안선 길이는 4.2㎞, 산책길의 공식 이름은 ‘마라로’이다. 본디 원시림이 울창했던 섬이었으나 무릇 섬사람들 꿈이 그렇듯이 경작지를 얻고자 숲을 모두 불태웠다고 전한다. 이후 제주도민들은 다시 나무 심기운동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분출하여 형성된 마라도는 섬 전체는 거대한 현무암석 덩어리이다. 그만큼 물도 귀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섬 밖의 해안선은 해식애가 발달해 동굴과 아름다운 기암괴석으로 이뤄졌다. 바다 속도 현무암이 깔려 있어 수산물이 서식하기엔 최적지이다. 섬에 들어서면 주민들이 내다 파는 싱싱한 전복, 소라, 해삼, 성게, 미역, 톳, 자리돔이 이를 웅변한다. 특히 자리돔이 많이 잡혀 선착장 이름까지 자리덕 선착장이 있다.
동쪽 해안은 태평양의 거센 파랑에 침식되어 ‘그정’이라고 부르는 수직절벽인데 높이가 39m이다. 서쪽 벼랑은 15m~30m 높이이다. 반대로 남쪽과 북쪽 해안은 식물과 함께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해안은 그렇게 불규칙적인 암석으로 이뤄져 인공적인 포구 시설을 만들기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교통시설이 불편하다. 섬사람들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네 곳에 선착장을 설치해 바람에 따라 위치를 바꿔가며 배들을 정박한다. 동북쪽 해안에는 알살레덕 선착장, 동남해안 장시덕 선착장, 서남해안 신작로 선착장, 서북해안의 자리덕 선착장이라고 명명했다. 자리덕과 장시적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아낙들은 대부분 해녀 출신인데,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심한 사리 때는 무서운 급류가 몰아쳐 잠수를 하지 않는다.
이 섬의 단골손님은 강태공들이다. 주 어종은 벵에돔, 자리돔, 감성돔. 마라도와 가파도 사이를 이동하며 낚시를 즐기는데, 해역에 영양물이 활발히 떠다녀서 대형 돌돔과 벵에돔을 겨냥한 것이다. 일출 일몰 때 입질이 집중된다.
마라도등대(사진=박상건)
마라도 해식동굴(사진=박상건)
마라도 최고점은 39m, 그곳에 등대가 있다. 마라도등대는 1915년 3월에 첫 불을 밝혔다. 등대에서 내려다 본 동서남북은 망망대해. 문득, 인간은 갈대이고 종이배 같다는 생각에 젖는다. 이 등대는 일본이 침략의 일환으로 설치했는데 태평양전쟁 때 괌이 함락되고 필리핀이 함락되자 패전을 눈앞에 두고 연합군의 본토 진입을 취소화 하고자 제주해안에 동굴만 80여 곳 700여개를 만들었다. 등대는 일본군이 작은 섬들과 교신하는 군사통신기지로 사용했다.
마라도등대는 각국 해도에 표시돼 있을 정도로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쪽으로 배가 들어올 경우 맨 처음 이 등대와 마주한다. 동중국해와 제주도 남쪽 해역을 지나는 배들에게는 희망봉으로 불린다. 등대는 10초마다 한 번씩 반짝이고 42km까지 비춘다. 비바람이 치고 안개가 끼면 공기압축기로 사이렌소리를 30초마다 한 번씩 울려서 8km 해역까지 섬의 위치를 알려준다. 현재 해양수산부 소속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한다.
해가 떨어지면 가로등도 없던 마라도 길을 비춘 것은 애오라지 등대와 달빛뿐이었다. 지난해서야 몇 개의 보안등이 돌담 주변에 설치됐다. 80년대까지 마라도 등대원의 삶은 매우 척박했다. 이송균 전 마라도 등대소장의 회고담이다. “전기가 없어 불을 지피기 위해 말똥과 잡초, 말라비틀어진 이름 모를 해초들을 주워 불쏘시개로 사용했어요. 먹고 사는 일이 힘들어 아내는 동네사람들과 물질을 나갔죠. 물론 보람도 많았죠. 표류하는 어선을 발견해 석유를 제공하고 구조한 일도 있었고...”
이제 마라도 등대는 연간 30만 명이 찾는 관광 섬의 상징이 되었다. 등대 앞마당에는 세계등대 모형과 대리석 세계지도가 새겨진 쉼터 등 추억의 해양문화공간이 조성돼 있다. 야생 난초와 갈대숲도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출한다. 마라도 여객선은 모슬포 운진항, 송악산 산이수동에서 출항한다. 운진항(064-794-5490) 산이수동(064-794-6661). 배편 예약은 필수이고 당일치기 여행의 경우 섬 체류시간은 1시간 20분이고 반드시 타고 간 회사의 선박을 이용해야 한다.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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