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면 사립문에 금줄을 치고 솔가지를 매달았다. 집 지을 때도 소나무이고 집의 기둥의 든든함은 얼마나 좋은 소나무를 썼느냐가 결정했다. 애국가 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하는 영상배경에 등장하는 동해 기암절벽 위 우뚝 솟은 소나무는 지조와 원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그렇게 우리기상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 때문인데 1905년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후 88년 우리 숲으로 감염돼 90여개 자치단체 피해가 잇따르고 고사목만 860만 그루가 넘는다. 소나무재선충병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재선충을 몸속에 지니고 소나무 수피를 갉아 먹을 때 전염된다. 전염 순간, 100% 말라죽는다.
그래서 ‘소나무 에이즈’라고 부른다. 매년 수백 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지만 완전방제작업도 완전치료약도 없다.
최근 9명의 기자와 함께 이런 고충을 겪는 스페인 포르투갈의 산림현장 취재단과 동행했다. 비가 쏟아진 가운데 스페인 농림부 산림국장의 안내를 받으며 꼬불꼬불 산길을 돌고 돌아 이베리아반도 국경지대에 도착했다. 스페인에 재선충병이 처음 발생한 것은 2008년, 포르투갈 국경과 500m 떨어진 에스트라두마주(Extremadura州) 국경지대에서였다.
스페인 전체 산림 1400만ha 중 700만ha가 솔숲인데 재선충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스페인은 감염목 반경 20㎞ 이내에 인력과 장비, 헬기를 동원해 예찰에 나섰고 3㎞ 이내의 소나무를 모두 벌목했다. 약 3만t에 달하는 소나무가 사라졌고 210만유로, 예찰에 34만5000유로가 소요됐다.
남한 크기의 포르투갈은 한 때 스페인과 함께 세계를 호령했으나 2013년부터 IMF 구제 금융 중에 재선충 예산마저 확보 못해 지난 10년간 40만ha의 숲을 잃었다. 국토 3분의1이 솔숲인데 감염된 소나무는 바로 제거 후 유칼립투스를 심었다. 종이를 생산하는 유칼립투스는 성장기간이 12년으로 소나무 40년에 비하면 경제적 가치가 큰 셈.
그러나 숲은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숲을 30분 산책했을 때 사람의 심박 변이도가 안정되고 긍정적 감정이 증가하며 인지력이 향상된다. 15분간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농도가 15.8% 낮아지고 아토피와 우울증도 치유는 물론 도심 열기와 소음을 낮추고 이산화탄소를 정화한다.
몇 해 전 가을 산을 찾았을 때 태풍이 할퀴고 간 참혹한 폐허의 숲을 보았다. 그 숲에서 나는 이런 시를 썼었다. “지금 숲에는 물빛, 마찰음, 허공에는 사선의 가지들이/햇살줄기를 가위질 하고 있다/잘려나간 햇살들이 방아깨비처럼 톡톡 튀어 오르는 것을 보면/숲의 생명력은 팔짝팔짝 뛰는 햇살의 힘에 있다/(중략)/넘어지면 넘어진 대로 서로의 목침이 되고/팔베개가 되어주는 사선의 삶/경계 없는 세상이 숲을 이루고” (‘상수리나무 숲에서’ 중에서)
그렇게 윤회의 시간을 거친 나무들은 김화영의 ‘글의 침묵’처럼 우리 감성을 자극하며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만 바람소리를 떠나보내고……문득 어둠이나 무(無),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나무 같은 문장”의 숲을 이룰 것이다. “그 속을 천천히 거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 곁에서 숨 쉴 것이다.
성철스님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영롱한 아포리즘으로 인간의 생각과 판단이 달라진다고 해서 산과 물이 없어지거나, 뒤바뀌지 않는다는 자연의 도와 진리를 일깨워 줄 것이다.
숲이 고향인 종이 소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 연간 종이소비량은 약 4억만 톤. 30년생 원목 66억 3000만 그루 분량이다. 우리나라 1인당 종이소비량은 세계 11위로 높이 18m 지름 22㎝의 소나무 87그루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숲의 규모로 보면 90㎡로 30년 세월 가꿔야 하는 양이다.
우리나라 목재 자급률은 10%에 불과해 수입에 의존한다. 대부분 목재를 수입하는 보르네오 섬은 아시아의 허파로 불리는데 원시림의 30%가 사라졌다. 자자손손 전해줄 우리 금수강산이 이런 절망의 숲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내 몸, 내 영혼처럼 우리 숲을 되살리고 보존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