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국가브랜드위원회] 남도의 섬(박상건 섬문화연구소장)

섬과 등대여행/남해안

by 한방울 2011. 8. 23. 16:58

본문

 

  • 남도의 섬, 더불어 살다 _ 박상건 (사)섬문화연구소 소장
섬사람들은 섬과 바다에서 생존하는 법을 익혔고 주어진 환경을 즐길 줄 알았다.

 지심도 리아스식 해안


대한민국은 동해, 서해, 남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다. 대한민국 섬은 모두 3,358개이다. 이중 무인도가 2,876개 유인도가 482개이다. 전체 섬의 70%가 남해안에 분포한다. 남해는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이다. 하천의 침식을 받은 곳이 물에 잠겨 해안선이 복잡하고 그 때문에 물이 잔잔해 양식에 좋다.
모든 한국인이 그렇지만 특히 섬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남쪽 섬사람들은 지극히 자연친화적이다. 거센 바람과 외침을 받아온 섬사람들은 스스로 생존하는 방식을 섬과 바다에서 익혔고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주어진 환경을 즐길 줄 알았다. 자연에서 시와 그림 등 예술적 상상력과 은유의 기교와 매력을 터득해왔다. 섬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삶의 상징어가 나부낀다. 그래서 섬으로 가는 길은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보고 나지막이 나를 반추하는 일이다. 지난 한해 여객선을 타고 섬을 찾은 한국인은 1500만 명에 이른다. 연륙교를 이용해 승용차로 섬을 찾은 사람까지 합하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해 한번쯤은 섬에 간 셈이다.
섬에 가면 섬사람의 문화와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출렁인다. 갯바위 아래 수많은 해양식물과 한 뼘 섬 기슭에 뿌리를 내리는 꽃과 식물들의 생명력이 있다. 한국인들은 그곳에서 살아있는 자연의 체험을 통해 삶의 여유와 희망을 깨닫는다.

죽방렴 멸치잡이로 유명한 지족해협의 섬, 창선도

평화로운 창선도 전경


멸치잡이 체험하고 멸치 맛에 취하는 섬이 경남 남해군 창선도이다. 자연의 이치를 잘 활용한 죽방렴은 창선도의 대명사이다. 물살이 빠르면서도 얕은 지족해협이라는 곳에 대나무말뚝을 V자로 박아놓으면 고기가 빠른 물살 때문에 방향을 잃고는 이 대나무 길 사이로 빨려 들어가 나오지 못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아주 원시적인 고기잡이 방식은 세월이 지나서도 여행객의 감탄을 자아내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 멸치는 그물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채기가 없다. 멸치는 은빛으로 눈부시고 그 맛도 여느 멸치와 격이 다르다. 생멸치를 먹어보면 뼈 씹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멸치가 지족해협의 빠른 물살에서 적응하기 위해 활동양이 많기 때문이다. 육질이 쫀득하고 고소한 맛이 있다. 이렇게 잡은 멸치로 멸치쌈밥, 멸치회무침 등으로 먹을 수 있다. 인근 식당에서는 메뉴판에 기본으로 들어 있음으로 꼭 한번 그 별미를 음미해보자. 대한민국 조상들의 그 신기하고 위대한 지혜를 한번쯤 되새김질해면서 말이다.

노을 지는 지족해협의 죽방렴 멸치어장


사천(삼천포)로 넘어가는 쪽 해협에는 거의 죽방렴이 설치돼 있다. 여행객들은 드라이브 중에도 언제든지 내려서 간접체험을 하고 사진촬영을 할 수 있다. 자치단체에서도 나무다리를 만들어 이 죽방렴을 둘러볼 수 있도록 설치해 놓았다. 대나무를 엮어 놓은 모습과 어항처럼 생긴 끝자락에서 물고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팔딱이는 모습은 그저 신기할 느낌을 줄 뿐이다.

 포구에서 어민들이 팔고 있는 죽방렴 멸치


유배지 섬 흑산도 바닷길을 느릿느릿 걸어가기

흑산도 전경


흑산도는 목포항에서 중국 방향으로 97Km 거리에 있다. 11개 유인도와 89개 무인도로 이루어졌다.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파도 높이가 3~4미터 일어 뱃길이 묶이는데 일본 중국어선 할 것 없이 모든 선박들이 바람을 피해 흑산도항으로 들어선다. 흑산도는 국제항이다. 산세와 물빛이 너무 푸르다 못해 짙푸르게 검은 색을 띠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흑산도. 바다가 유난히 깊어 검고 해안 숲들도 검푸른 윤기를 자랑하며 흑산도가 섬 전체가 왜 다도해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지를 실감케 한다. 흑산도의 모든 바다와 섬은 어업전진기지이다.

꼬불꼬불 흑산도 상로봉길


흑산도 길의 대표 명소는 상라봉 가는 길이다. 산길을 굽어 오르면 장보고가 주민들과 함께 지은 성곽이 보인다. 청해진 설치 후 당나라와 교역하는 중간 지점으로 삼은 성곽이다. 이곳에서부터 상라봉 정상으로 걷는 길은 강원도 미시령 고갯길처럼 꼬불꼬불 길의 연속이다. 아주 옛날 육지로부터 고립된 외딴 섬의 기억을 더듬다보면 감회가 남다르게 와 닿는다. 열두 구비의 산길을 넘어가는데 다 올라서 내려다보는 흑산도 앞바다와 올망졸한 무인도는 한 폭의 수채화이다.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은 고갯길이다.
꼬부랑산길 끝 전망대에서 흑산도 앞 바다를 내려다 본 풍경 또한 절경이다. 횡섬, 가도, 영산도, 홍도 쪽 망덕도, 장도, 쥐머리섬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전망대 아래 동백꽃이 웃음을 머금은 그 자리에는 한국의 대표가수 이미자의 명곡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다. 험한 파도에 목숨을 맡긴 채로 먼 바다로 떠난 남편을 애태우다가 가슴이 검게 타버린 섬 색시의 애환이 진하게 묻어난 노래가사이다.

흑산도 포구와 어선

흑산도 명품 홍어


이 고갯길 넘어 해안도로를 걷다보면 망중한을 즐기는 마을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인심 좋은 어민들은 나그네에게 홍어를 권한다. 홍어는 흑산도 특산물이다. 홍어는 사흘쯤 삭혀야 제 맛이고 한국 전통 술인 막걸리에 곁들여 먹으면 좋다. 홍어에 이 막걸리(탁주)를 곁들여 먹는다고 해서 홍탁이라 부른다. 좋은 홍어는 칼질할 때 찰떡처럼 찰진 육질을 드러난 것이며 좋은 홍어부위는 홍어애(창자)이다.
흑산도는 궁궐이 있던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부터 아주 먼 고립의 섬이어서 조정 권력다툼에서 쫓겨난 정약전 선생을 이 섬에 보내 15년 간 유배생활을 하게 했다. 정약전은 유배 생활 중 섬 소년들을 가르치며 저술활동을 했는데 바닷고기와 해산물 155종을 채집하여 자산어보를 집필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최초의 수산학 관계 서적으로서 실제조사에 의한 저술이라는 점에서 학문적 가치가 높다. 정약전 선생은 16년째 되는 날 이 섬에서 죽었다. 또한 흑산도는 조선시대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최익현이 일본과 통상 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생활을 했던 섬이기도 하다. 흑산도는 이처럼 외딴 섬이면서 선비들의 정신적 쉼터, 강인한 삶의 체험의 섬으로 상징된다. 그런 고귀한 영혼들을 기리고 꽃피우듯 섬의 바위나 숲길에는 풍란과 각종 희귀식물이 자란다. 그리고 바다에는 통통대는 어선들과 나부끼는 깃발들로 새로운 생동감을 웅변해준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섬, 홍도

깃대봉에서 내려다 본 홍도 해변


목포에서 116km. 흑산도에서 26Km 더 가면 남서해안 마지막 섬 홍도가 있다. 여객선이 도착하는 선착장이 있는 마을이 홍도 1구, 산등성이를 너머에 홍도 2구 마을과 홍도등대가 있다. 홍도1구에서 홍도2구로 가는 산자락이 깃대봉인데 이 능성에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천혜의 섬 홍도이기에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뭍으로 가져올 수가 없다. 붉게 물든 해안절벽이 억겁의 세월을 말해준다. 붉은 절벽에 타오르는 노을이 부서지면 더욱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해녀마을 홍도 2구

목선에서 물질을 준비하는 해녀


중국과 가까워 중국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홍도에서 주민들은 15일간 먼 바다에서 홍어를 잡고 15일간은 바닷가에서 그물 다듬는 일로 생활한다. 홍어잡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낙으로 고기를 잡는다. 마을 입구에는 이런 주낙 낚시채비들이 즐비하다. 주낙으로는 농어, 감성돔, 참돔, 우럭, 줄돔, 방어 등을 잡는다.
아낙들은 대부분 해녀이다. 해녀물질은 보통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다. 아주 어릴 적에는 주로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5~6학년쯤 되면 어머니로부터 부표 일종인 두렁 박을 받아 얕은 데서 깊은 데로 헤엄쳐 들어가는 연습을 한다. 빠른 사람들은 중학생 때부터 작업하는 것을 시키는데 40세를 전후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다. 해녀들이 물속에 들어가 작업하는 시간은 3분 정도. 주로 잡는 해산물은 해삼, 멍게, 성게, 전복, 소라, 미역, 청각. 잡은 것들은 바로 현지 관광객들에게 팔거나 도시민들로부터 예약 순서에 따라 보내주기도 한다. 한 번 나가서 일하면 수입은 10만 원 안팎이다.
남도 섬 문화가 그대로 되살려지는 이 마을은 아주 한적하고 평화롭다. 마을 오른쪽 편으로 아름다운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면 해수면으로부터 89m에 이르는 홍도 유인등대가 있다.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한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군 병력이 상주해 군사기지 역할도 했던 곳이다. 그래서 홍도사람들이 만든 홍도등대였지만 정작 주민들의 접근이 금지되었다가 전쟁에서 패한 일본인이 야간도주하면서 남은 식량은 주민들에게 배급되었고 한동안 홍도 주민들에 의해 등대가 운영되기도 했다. 지금 이 등대는 홍도 사람들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모든 어선의 뱃길을 비추어준다. 조건 없는 사랑의 메신저로 남해안 최서 쪽 바다의 지킴이가 되어 우뚝 서 있다.



 

글쓴이 박상건

(사)섬문화연구소 소장
계간 <섬> 발행인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91년 <문학과 지역> 詩 발표 등단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역임
국토해양부 무인도서관리위원회 위원 역임

저서
≪언론 입문을 위한 기사작성 실무≫, 푸른사상, 2011
≪바다, 섬을 품다≫, 이지북, 2011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터치아트, 2010
≪대한민국 걷기사전≫, 터치아트, 2010
≪상위 5%로 가는 사회탐구교실 1-섬과 바다≫, 스콜라, 2009
≪한강의 섬을 찾아서≫, 새로운 눈, 2009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당그래, 2007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당그래, 2004
≪포구의 아침≫, 책만드는 집, 2003

링크
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http://blog.daum.net/pass386

 

국가브랜드위원회 원문 보기(2011.8.22일자)

http://www.koreabrand.net/kr/know/know_view.do?CATE_CD=0010&SEQ=2300&pageIndex=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