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시 도심 퇴근길이 시작될 무렵
충무로에 난데없이 섹스폰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슨 음악교실이 생겼나 싶어 사무실을 나서
간판 어디를 둘러봐도 댄스 학원도 통기타 학원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들려오는 그 소리 따라가다 보니
한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이 섹스폰을 불며 거리를 걷습니다
종로통에서 호프를 마시다 보면
할아버지가 늘 곁에 다가와 통기타를 튕기고
한잔 받아 마시고
용돈도 챙겨 가던 따뜻한 추억이 있었드랬는데
충무로 추운 길거리를 걸으며
정신없이 오고가는 사람들의 뇌리 한번씩 쳐주며 스치는
섹스폰 소리가 아름답네요
노을이라도 붉게 핀 날이었다라면
어느 강이거나 겨울바다 떠올리며
우리 마음 평온하게 물들였을 것을
하여, 저 섹스폰 소리 제 값을 다 했을 것을
그 아쉬운 마음 쓸어내리며
먼발치서 바라보니
노파는 연이어 뱃심 끓어 올리며 섹스폰 불어제낍니다
그 소리 아래 아무 일 없는 듯
도로에는 퇴근 차량 즐비합니다
저 노인이 저 대로 정 중앙으로 나나
어느 차 본네트에라도 올라서 섹스폰을 불어제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봅니다
5.18
6.10 항쟁
촛불시위의 심지 역할은 못 되드래도
우리들 가슴에 생명의 깃발로 나부낄 것만은 분명합니다
찌들린 사람들의 영혼에 소낙비로 내려
이 저녁 청초한 울림으로 밀물질 것임은 분명합니다
아, 불어라 섹스폰
울려라 섹스폰 소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