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박재삼 시인 시비
[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44> 박재삼, ‘천년의 바람’
천년 전 바람처럼, 지치지 말 일이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 박재삼, ‘천년의 바람’ 전문
박재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천년의 바람’ 표제작이다. 1974년 민음사에서 출간됐고 1998년 같은 출판사에서 ‘박재삼시전집’으로 다시 선보였다. 박재삼 시인은 토속적, 향토적인 시정시를 생산했다. 특히 자연과 설화에 남다른 경지를 보이며 여백의 미학을 노래했다.
시인의 눈에 ‘천년의 바람’이라는 풍경이 걸려든 것은 아주 경이적이다. 천 년 전, 만 년 전 아니, 태초부터 바람은 불었다. 풀잎과 나뭇가지를 흔들어 깨우고 구름을 밀어내고 파도를 휘감아 온 바다를 울렸을 것이다.
그렇게 바람의 울림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다시 이승을 떠난 후에도 “쉴 새 없이 와서”, “되풀이”하고 있다.
소설가 최인호는 ‘산중일기’에서 “잠시 숲에 가 보아라. 길이 없으면 칼날과 같은 풀을 밟고 길을 만들어 가 보아라. 그곳엔 바람이 있다. 신라 천 년의 바람이 아직까지 불어오고 있다. 백제 천 년의 바람이 아직도 불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바람은 자연과 역사를 관통하면서, 찰나에 ‘간지럼’을 피거나 때로 ‘폭풍’이 되고 ‘퇴풍’이 되면서 오늘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바람의 길은 직선이기도 하고 수평이기도 하면서, 장애물을 넘어 또 다른 길로 바람불어가며 산다. 그러니 사람들아 “길이 없으면 칼날과 같은 풀을 밟고 길을 만들어 가 보아라.”,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탐을 내는 사람아.”
박재삼 시인은 1933년 일본에서 태어나 네 살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삼천포에서 성장했다. 고려대 국문과를 중퇴했고 1953년 ‘문예’에 시조, 1955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돼 등단했다. 시집으로 ‘춘향이 마음’, ‘햇빛 속에서’, ‘천년의 바람’, ‘어린 것들 옆에서’, ‘추억에서’ 등이 있으며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노산문학상, 중앙일보 시조대상 등을 수상했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이 글은 <데일리스포츠한국> <리빙TV>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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