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 37 문태준, ‘맨발’
‘부르튼 맨발로’ 길 떠나는 가장의 일생이여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 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문태준, ‘맨발’ 전문
조개와 인간의 삶을 대응시켜 노래한 시이다. 은유와 의인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시상을 전개하는 비유법이 돋보인다. 2003년 시인들이 가장 좋은 시로 선정한 작품이다.
‘맨발’, ‘탁발’,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 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라는 ‘금강경’에 나오는 불교적 시어가 ‘움막’과 결합해 가난과 가장의 삶이 아주 성스럽게 묘사됐다.
마치 한 생물의 탄생과 삶의 여정을 슬로비어로 보는 것만 같다. 바닷가를 기어가는 개조개를 통해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가장과 기쁨 반 슬픔 반으로 살면서 끝내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의 일원이 되는 우리네 삶을 되새김질케 한다.
‘맨발’은 조개의 속살을 통해 가장의 존재를 의미한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가장의 삶은 고행 길이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처럼 고난과 시련으로 질퍽이며 살아가는 당신의 이름은 가장이다. 그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가장은 먹고 사는 문제를 단봇짐으로 울러 메고 이 풍진세상을 헤쳐 간다.
그렇게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좋으나 싫으나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온다.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우 듯, 살붙이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하룻밤은 그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그렇게 하루의 일생이 멎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해가 뜨고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가장은 나설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1970년 경북 김천시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곳’ 등이 있다. 시 해설집 ‘포옹’,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 등이 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롱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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