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23 박상건, ‘눈 내리는 날 모닥불에 조개를 구우며’
사랑도 삶도 불붙으면 붉은 못처럼 옹이처럼 튀는 것
눈 내리는 공사장에서 일꾼들이 모닥불에 조개를 굽는다
옛 양계장 터를 파헤쳐 판판한 주차장으로 고르는 중인데
흙무더기 팔수록 검게 그을린 판자더미들에 갇힌 닭울음소리
일제히 눈발로 일어섰다
질척이는 흙 털며 군데군데 끌어모아 불 지핀 모닥불
붉은 닭 슬기 불꽃 일어 석쇠 붉게 달구었다
밑불을 끌어내 화덕에 고구구마와 오겹살 호일로 싸 넣어두고
밑불 위에 생굴, 청어, 피조개, 소라, 바지락이 파도소리로 타들어갔다
눈은 내리는데, 하염없이 눈 내리는데
판자더미 서로 가슴 맞대 피어 문 불꽃,
쐐주 한 잔에 조개를 구워먹는 어느 하룻날
매운 바람 휘돌아 눈시울 붉힌다
문득, 어릴 적 아랫목 데피고 실가리국에
따뜻한 밥 말아주던 그 장작불 맵게 탔다
눈발 장작어깨 다독이며 눈물 흘려 적신다
석쇠 위 하얀 생굴 푸른 고등어에 짠바람 타들어가는 소리
조새 찍어 싸면서도 굴뿌리는 넉넉히 남겨두던 아낙네들
똑딱선 통통대는 화도 앞 바다 그물에 걸린 새끼 고등어 다시 방생하던
그 넉넉함이 공사장 모닥불 위에 눈발로 휘날린다
그 뜨거운 사랑 불붙어 장작 옹이 튀는 소리
사랑도 삶도 불붙고 보면 널빤지에 붉게 박힌 못처럼 튀는가
눈발, 참 무심히 파도소리 쏟아놓고 드러눕는다
- 박상건, ‘눈 내리는 날 모닥불에 조개를 구우며’ 전문
옛 양계장 터를 고르며 땅에 묻힌 널빤지를 골라내 조개구이를 해먹었다. 질퍽한 흙더미에서 널빤지를 끌어낼 때마다 닭장 닭울음소리가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붉은 눈길로 타오르는 모닥불 위에 생굴, 청어, 피조개, 소라, 바지락을 굽고 화덕에 고구마와 돼지고기를 구웠다. 문득, 어릴 적 아랫목을 지피던 장작더미 불빛이 스쳤다. 장작이 귀하던 시절에 돌 사진 찍으러 가던 어머니는 통나무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여섯 식구 아랫목 데피고 뜨거운 실가리국을 끓이기 위해 장작더미를 샀다. 어머니는 잔치 때마다 아궁이 불 지피면 눈물이 났다. 모닥불이 어머니 눈물처럼 타닥 탁탁 타올랐다. 하염없이 눈은 내리는데....
내가 즐겨 먹던 생굴은 어머니와 섬 아낙들이 겨울바다에서 따내던 것이었다. 굴 씨를 말리지 않기 위해 속굴만 조심히 따냈던 갯마을 사람들. 모닥불 속에 박힌 못이 붉게 타올라 스러졌다. 내 삶의 옹이도 하나 둘씩 툭, 툭 튀어 나왔다. 눈발은 내리는데, 하염없이 내리는데....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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