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문화 폐단 사라져야
한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청소년의 장난 메일로 인해 한 가족의 정신적 피해가 가중되고 해당 학교의 사이트가 마비되는 등 인터넷 문화의 척결되어야 할 역기능을 곱씹어 보게 하고 있다. 인터넷공간을 통해 쌍방향커뮤니케이션 수업의 활성화를 꾀하는 필자의 경우도 연사흘 학생들이 확인 없이 퍼 보내는 쪽지와 메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럴진대 피해자 가족의 고통은 어느 정도였겠는가?
오마이뉴스 역시 시민기자가 올린 <희귀 혈액 RH-B형 구함>이라는 기사를 내보냈었다. 그리고 파문이 확산된 가운데 3월 5일자 이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는 [기사정정]를 내보냈는데 사과문 형태의 기사 전문은 이렇다.
“오늘(5일) 오전 11시경 유아무개 시민기자가 올린 <희귀 혈액인 RH-B형을 구합니다> 기사는 누군가 장난으로 인터넷상에 올린 글을 바탕으로 해서 작성한 것으로,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장난 글은 4일부터 인터넷상에 퍼지기 시작했으며, 현재 인터넷상의 여러 게시판에 게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장난 글을 사실로 믿고, 애틋한 마음에 이 기사의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요지의 글이 나간 후에도 오마이뉴스와 연동된 포탈사이트를 통해 이미 잘못 알려진 해프닝성 글은 ‘퍼 나르기’로 상징되는 온라인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언론을 통해 한번 당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못한다. 아무리 언론이 정정기사와 반론보도문을 내보낸다고 해도 처음 보도되었던 기사만큼 크게 보도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여론이라는 것은 특정 이데올로기나 화제 거리가 소용돌이치면서 퍼져나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언론의 소용돌이 현상과 미미한 정정기사의 힘
그래서 그 여파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피해자의 상처만 깊게 도지고 언론 보도의 문제점만 고스란히 그 뒤안길에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자고로 언론의 사실보도와 확인보도는 수시로 꿈틀대고 변화하는 사회변동과 학문의 패러다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진리처럼 적용되고 있으며 언론학의 명언처럼 신봉되고 강조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보도한 근거가 되고 지금도 떠돌고 있는 인터넷상의 쪽지의 내용은 이렇다.
성별: 남
이름: 박x우
이유: 백혈병으로 rh-B형의 피가 필요함
학교: 능인고등학교
병원: 영대병원
집: 053-784-04XX
전화: 010-9559-33XX
P.S: 혹 "나 사람 아냐" 이러고 안 돌리지 말고 몇 초도 안 걸리는 거 돌려줍시다 ctrl+c 누르면 복사되는 거 알죠? ^-^* 꼭 돌려요~저도 지금 돌리는 중입니다^^
필자는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백혈병 환자를 돕고자 노력했던 전례가 있어 이를 기사화 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어렵게 박x우군의 어머니 양모씨(50)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50 평생을 살아오면서 최근 일주일 동안 받은 이런 고통은 처음입니다. 외국에 나가있는 큰 아들을 비롯 전국의 친지들이 걱정하는 전화가 연일 걸려오고 언론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손에 일이 잡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한 사람의 장난에 이렇게 고통받아야 합니까? 왜 전화 코드를 뽑고 살아야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학부모, “우리 가족 정신 피해 누가 책임지나요?”
양씨는 또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 글을 지워달라고 했는데 다음은 삭제하겠다고 했으나 다른 곳에서는 도와주지를 않는다”면서 “사실이 아닌 경우는 그 피해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주고 이를 삭제해 주어냐 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양씨는 아들 주변 친구로부터 장난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집 전화번호와 핸드폰 번호를 안다는 것은 주변 친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장난 메일이 처음 올라간 곳은 세이클럽이었고 다시 싸이월드로 번지면서 각 미니홈피 게시판, 방명록, 쪽지를 통해 급격히 퍼 나르기가 이어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싸이월드에서 받은 쪽지와 메일은 네이버 등 여러 블로그, 카페로 연결돼 ‘박x우’라는 이름을 가진 초등학교 교사 홈페이지와 실제 지난해 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동명이인의 뇌종양 수술을 위한 모금운동 카페에 방문자가 부쩍 늘고 있어 장난 메일의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한 카페에서는 “저건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희귀한 병(천비무객)”, "왜 이리 난리인가요? 박x우씨가 유명한 사람인가요?(tjdda55)", "연락이 안 되면 경찰에 실종 신고하셔서 찾는 게 빠를 듯...” 등 해당 학생의 이름은 인기 검색 순위에 오르고 있다. 그럴수록 가족의 정신적 압박은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박군의 어머니는 이제나 저제나 글이 지워지기를 확인하며 가슴만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개인 정보유출 심각, 해당 고등학교 홈페이지 다운
박군이 다닌 대구 능인고등학교는 얼마 전 청소년 인기 방송 프로그램인 골든벨을 울려 화제가 되기도 했던 학교인데 몰려드는 네티즌들로 인해 학교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있는 실정인데, 이 학교 출신인 이수군씨는 “준우군 이야기로 들러 봤는데 일단 사실이 아니라니 다행이구요. 이런 사람 목숨이 오가는 일에 장난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학교에서 인터넷 게시판 여러 곳에다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해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박군의 어머니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가족의 인적사항과 연락처가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져나갔다는 사실. 언론을 통해 우리사회의 ‘정보유출’ 관련 보도를 접하긴 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이런 큰 피해자가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과 관련된 것들이 너무 확인 절차 없이 퍼져나갔다는 점에서 네티즌들의 불감증과 이를 여과하지 못한 인터넷 관련 회사에 혀를 내둘렸다. 특히 사춘기의 피해 당사자인 아들은 집에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의 정보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바깥출입을 꺼릴 정도란다.
이번 문제를 발판으로 반복되는 인터넷 문화의 역기능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 인터넷은 우리 사회의 큰 변화를 가져온 미디어 혁명이랄 수 있다. 이는 순기능에 해당한다. 인터넷의 역할은 소통문화의 활성화이다, 아주 소중한 역할이다. 이는 쌍방향이라는 데 그 의미가 크다. 그렇게 쌍방향이라는 데는 어떤 일을 쉽게 널리 알려 설득하고 이를 수궁하고 그렇게 온라인을 통해 모이고 연대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단체, 개인과 사회로 잇는 온라인 공동체의 또 의미가 있다. 더불어 가치 있는 일로 맺어진 일종의 win-win의 관계가 인터넷 문화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역할인 셈이다.
인터넷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첨병이나, win-win의 관계여야
장난 쪽지와 메일에 동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명분이 선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퍼 나르는 작업이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한 커뮤니케이션의 연장선에 있다면, 사실에 근거한 일인지 충분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인터넷은 1인 미디어 시대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는 데는 그에 따른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도 함께 하겠다는 전제가 뒤따른다.
근거 없는 연예인의 사생활 파일을 퍼 나르는 문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가 채 사라지고 해결되기 전에 또 다시 인터넷 문화의 무책임과 선정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상대에게 가해질 피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익명성을 무기로 인터넷 공간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전도시키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는 국민들의 정서를 오염시키는 역기능으로서 필히 척결되어야 한다.
이제는 네티즌들은 건전한 인터넷 문화 생활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되새김질해보아야 한다. 진정한 인간 커뮤니케이션이 살아 숨쉬는 그런 아름다운 핫라인으로서, 자유롭고 창의로운 사색의 공간으로서 인터넷 문화가 거듭나야 할 것이다.